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二編 中古(新羅統一期-高麗)中古의 後期(高麗朝)第一章 高麗의 創業과 經營

二. 成宗의 治世

太祖의 뒤를 받아 文物制度를 整備하고 王朝의 基礎를 튼튼히 한 이는 실로 成宗(第六代)이다. 成宗 時代에 이르러 (國紀 3153-3330 西紀 520-997) 中央과 地方官制가 다시 改正되어 中央에는 三省六部 等 이른바 省, 部, 臺, 院, 寺, 司, 館, 局의 制度가 確立되고 出納宿衛와 軍國大事를 統輖하는 中樞院이 設置되었으며, 地方은 京畿 以外에 十道로 나뉘어 州 府 郡 縣의 官制를 定하고, 村長 村正 等으로 하여금 末端 行政을 보살피게 하였다.

軍制는 大祖 때에 唐나라의 府衛兵制를 본떠 六衛를 두었더니 成宗 때에 이르러 軍隊의 服色을 定하고 六衛 위에 左右軍營을 두었으며, 또 東北(咸鏡道) 西北(平安道를 가르친 것이니 成宗 때에는 平安北道 大部分을 걷우었음)의 兩面에 각각 兵馬使를 두어 國防을 嚴히 하였나니, 이러한 制度는 대개 高麗 一代을 通하여 行하였다.

敎育에 있어서도 이미 太祖 때에 松京과 西京에 學校를 세워 人材를 길러내었거니와 成宗은 特히 儒學을 尊崇하여 治世의 要法을 삼았나니 地方의 有爲한 子弟를 뽑아 올려 國子監(大學)에서 學業을 닦게 하고 때로는 國子生(太學生)가운데에 優秀한 者를 뽑아 宋나라에 留學도 시켰다. 그리고 地方 十二牧에 經學博士 醫學博士를 각각 한 사람씩 두어 敎學과 治病을 맡아 보게 하고 西京에 修書院(修書院)을 두어 史籍을 抄錄하여 갈머두게 하였다.

成宗은 또 實業, 經濟, 交通 等 各部面에 걸쳐 많은 業蹟을 나타내었다. 特히 그는 農事에 重點을 두고 人民의 休養에 힘을 썼나니 그가 卽位하자 人民에게 三年間 賦役을 免除하고 租稅를 半滅시켜 주었으며 農事에 때를 잃지 않도록 農繁期에는 人民의 使役을 禁하였고, 兵器를 걷어 農具를 만들게 하는 等 여러 가지의 農業 保護 政策을 썼다.

【義倉, 常平倉】人民 救濟策으로는 免災法을 制定하여 水 旱 霜 蟲의 재앙을 입은 者에게는 그의 程度를 따라 租稅와 賦役을 免減하는 전례를 세웠으며, 備荒策으로서 여러 州와 府에 義倉을 두어 一定한 數量의 米穀을 貯藏하게 하고 또 兩京 十二牧에 常平倉을 두어 米·布를 미리 蓄積하였다가 年事의 豐凶을 보아 賣買하게 하여 物價의 均衡을 안보하고 人民의 生活을 確保하는데에 큰 効果를 걷우었으며, 交通에 있어서는 陸路에 비로소 酒店을 두고 水路에는 船舶을 많이 만들어 水陸 往來를 便利하게 하였다. 【鐵錢】 이와 같이 産業과 交通이 크게 열리매 文化와 經濟가 따라서 發展되어 輕偏한 貨幣가 必要케 되므로 鐵錢도 비로소 이때에 지어 쓰게 되었다.

對外關係에 있어서는 成宗 때에 第一次로 契丹의 侵入을 받았으나 徐熙의 折衝으로 말미암아 外交的 効果를 걷우었나니 이에 關해서는 下第에서 다시 들기로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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