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政治의 腐敗와 田制의 紊亂
高麗 末期에 政治가 腐敗하며 綱紀가 무너지고 있던 위에 各地는 또한 外寇에 짓밟힌바 되어 國勢가 날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田制와 稅制까지 또한 極度로 紊亂하여 民衆은 塗炭에 빠져 있었다. 元來 高麗는 國初로부터 均田制를 세워 그것을 基礎로 兵制 稅制 俸祿制 等 모든 것을 定하고 國民의 生活에 根據를 고르게 하여온 것이다.
【田制의 壞亂】 그러나 中 末頃부터 田制가 무너져 權門 豪族의 土地 兼倂이 시작되었다. 이 弊風은 末期에 이르러 더욱더욱 盛行하여 橫門 勢家들은 山과 내(川)를 境界로 人民이 耕作하는 土地(公田)를 無制限으로 奪取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도 土地를 서로 爭奪하여 한필(筆)의 田土에도 五 六名의 所有者가 있어 각자 租稅를 빼앗어 가던 것이다.
그리하여 民衆은 立錐의 땅도 가지지 못하고 地主에게 바치는 租稅와 여러 가지 種目의 貢納이 國稅와 公課에 比하여 百倍나 되었다. 그리하여 租稅와 貢物도 바치기 前에 살림은 이미 비어버려 父母와 妻子가 各地로 흐터지는 형편이었다. 이에 國家의 基礎는 흔들리고 民心은 크게 騷亂하였다. 이 私田 改革은 당시에 重大問題로 되었으나 末期 高麗의 朝廷에는 이것을 바로잡을 力量이 없었나니 이러한 經濟的 條件은 高麗朝 沒落의 큰 原因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