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二編 中古(新羅統一期-高麗)中古의 後期(高麗朝)第六章 高麗와 外國과의 關係

一. 大陸의 北方諸國 及 宋·元과의 關係

高麗와 外國과의 交涉은 대개 關係 各節에서 이미 들었거니와 高麗의 對外方針은 이른바 善隣策이 中心이 되어 온 것이다. 高麗는 初期로부터 西北 이웃으로 契丹(遼), 金, 蒙古(元) 等 여러 나라가 順次로 일어났으며 다시 黃海를 隔하여 宋(南宋도)과 對하고 있었다. 高麗는 이 사이에 있어 國際 勢力의 均衡과 文物의 交流를 도모하려 南方의 宋과는 늘 親善 政策을 取한 結果 公的 貿易과(朝貢의 形式으로) 同時에 私的 貿易이 자못 盛行하였다. 禮成港을 中心으로 特히 宋商의 活躍이 旺盛하여 顯宗 때(三年)로 부터 忠烈王 때(四年)에 이르기까지 約 二百 六十餘年 동안에 그들의 來航한 回數가 約 百二十餘回에 達하였다. 그리하여 이 公私貿易을 通하여 宋의 書籍, 錦綾, 絹布, 文房具, 樂器(大晟樂) 茶 等과 香藥, 水晶, 瑪瑙, 玳瑁, 犀角, 鸚鵡, 孔雀 等 南洋物貨도 들어왔으며 高麗로부터는 銅, 銀, 人蔘, 牛黃, 黃漆, 硫黃, 布, 虎豹皮紙(白硾紙), 墨(松烟墨), 席(龍鬚席 花紋席)螺鈿, 擢扇 等 物貨가 輸出되었다.

北方 諸國에 對해서는 國防上으로 늘 警戒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는 同時에 저편에서 侵略策을 쓰지 않는 限에는 대개 平和策으로 對하였다. 契丹이 數次 侵入하였으나 高麗에서는 굳세게 그것을 擊退하였으며 때로는 親和策의 表示로서 또는 저편의 物的 欲望에 應하는 意味로서 朝貢의 形式을 取하여 文物의 交易도 行하였다.

다음 金에 對해서도 그리하거니와 特히 蒙古와의 關係는 매우 複雜性을 띠운 것으로서 兩國 交涉의 初期에 있어서는 約 三十餘年 동안 蒙古의 侵入에 對한 抗戰이 繼續되었다. 그러다가 結婚政策으로 和親關係를 맺게 되매 元나라의 壓力과 影響은 政治 經濟 文化 等 各方面에 나타나 (위에 보임) 前에 보지 못하던 큰 變調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元나라와의 이러한 關係는 우리 外交史上에 重大한 變化를 이르킨 것으로서 그의 惰性이 다시 朝鮮朝에 내려와 卑屈的인 對明外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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