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二編 中古(新羅統一期-高麗)中古의 後期(高麗朝)第六章 高麗와 外國과의 關係

二. 女眞 及 日本과의 關係

女眞族은 元來 文化程度가 자못 낮은 民族으로서 高麗에서는 그것을 劣等視하였다. 그들은 渤海가 亡한 뒤로 東南 滿洲와 우리의 鴨綠紅 流域 及 咸鏡道(咸興 以北) 一帶에 흩어져 얼마동안 (金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部落 生活을 하던 것이다.

高麗에서는 特히 咸鏡道 方面의 女眞人을 東蕃 또는 北蕃이라 하고 鴨綠江 方面의 그것을 西蕃이라 불렸는데 이들 女眞族에 對해서도 대개 上國 또는『父母의 나라』라 하여 그들 部長들 가운데에는 貢物을 바쳐 來附하는 者가 많았나니 이를 가르쳐 向化人이라 하였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歸化하는 者도 적지 아니하였다. 이같이 來附하는 女眞 部長에게는 大匡 將軍 等의 官職을 주고 特히 功이 있는 者에게는 姓名까지 附賜하여 그것을 覊縻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入貢에 對해서도 흔이 一定한 時期와 員數를 定해 주던 것이니 그들의 貢物은 대개 馬匹 貂皮 麩金 弋船 兵器 鐵甲 弓矢 等이며 高麗 朝廷에서는 綿絮 耕牛 釜鼎 等 그들의 生活에 必要한 것을 賞賜品으로 주던 것으로서 이것도 또한 公的貿易의 一種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向化人의 撫摩政策은 一面에 있어 다른 여러 女眞部落을 牽制하는 데에도 큰 効果가 있었다.

『日本과의 關係』 高麗와 日本 사이에는 國初로부터 正式 通交가 行치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高宗 時代에 이르러 倭寇가 침범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에 麗蒙 聯合軍의 日本 征伐이 있은 다음에는 兩國의 交涉이 더욱 杜絶되었다. 그러나 高麗 末期에 이르러 倭寇의 侵暴이 더욱 甚하여 婦女子와 兒童을 殺戮하는 等 人道에 어그러지는 殘涊한 行動이 많았으므로 禑王 때에 羅興儒와 鄭夢周를 前後하여 日本에 보내어 倭寇의 禁戢을 交涉하였다. 當時 日本의 室町幕府는 그의 邊方을 統制할 힘이 없으므로 交涉의 効果는 거두지 못하였으나 特히 鄭夢周는 九州探題인 今川了俊에게 交隣의 大道를 일깨워 주어 그를 크게 感服시켰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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