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彫板·活字와 其他 創案
(가)『彫版과 活字』 高麗의 文化 가운데에도 出版文化는 實로 世界의 二三次에 걸쳐 大藏經板을 새긴 것이 그러하고 印刷術의 極致인 金屬活字를 最初로 創案하여 實用한 것이 그러하다. 佛經의 彫板은 이미 部分的으로는 行하여 왔거니와 大藏經板에 이르러는 顯宗 때에 契丹의 侵入을 契機로 佛力의 冥護를 얻으려는 念願 아래에서 【大藏經의 初刻】 同王 十二年부터 六十餘年의 功을 쌓아 約 六千卷의 大藏經板이 完成(大藏經의 初刻) 되었다. 이것이 高麗大藏經板의 初刻이어니와 【義天의 續藏】 그 뒤에 大覺國師가 다시 宋과 遼 그리고 日本에까지 손을 퍼쳐 佛典의 註釋書를 모아들여 續大藏經 四千 七百餘卷을 彫板하였나니 이에 이르러 漢譯大藏經의 集大成이 이루어진 것이며 世界文化史上에 一大光輝를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이 經板의 大部分은 高宗 때에 이르러 蒙古의 兵火에 걸려 燒失되고 말았다. 【大藏經의 再刻】 이에 다시 外敵降伏과 國家安泰를 祈願하는 精神에서 高宗 二十三年으로부터 再刻을 시작하여 十六年의 積功으로 六千 五百餘卷 十七萬餘面의 大藏經板을 完城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高麗板 大藏經으로서 世界의 最古, 最大, 最善의 經板이니 지금까지 海印寺에 갈머있는 것이다. 그 밖에 高宗時代를 中心으로 醫書(新集御醫撮要方), 史籍(十二國史), 文集(東坡文集) 等의 彫板이 各地에서 자못 盛行하였다.
【鑄字(金屬活字)】 高麗의 印刷文化는 마침내 金屬活字를 創案하여 實用하기에 이르렀다. 高宗 二十一年에 (國紀 3567 西紀 1234) 鑄字로 써 詳定禮文(五十卷)을 박혀 반포하였나니 이것이 世界 歷史에 있어 金屬活字 使用의 始初이다. 이로부터 高麗의 活字印刷가 점점 盛하여 末期에는 鑄字印書를 맡은 機關으로서 書籍院까지 두었으며 그것이 다시 朝鮮朝에 내려와 더욱 精美하게 發達됨에 이르렀다.
(나)『火器와 木棉』 高麗末에 倭寇의 侵暴이 甚하매 國人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로 그의 覆滅策을 講究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에 崔茂宣이 생각하되 그것을 掃蕩하는 데에는 火藥과 같은 武器가 必要하다 하고 元나라의 焰焇匠이를 달래어 火藥의 制法을 대강 물어본 다음에 苦心 硏究를 거듭하여 마침내 火藥 制造를 完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禑王 三年에 (國紀 3710 西紀 1377) 朝廷에 建議하고 火㷁都監을 세워 火砲 火㷁 火箭 流火 走火 觸天火 等 嶄新한 火器를 많이 만들어 내인 結果 倭寇 掃蕩에 큰 効果를 거두었다.
木棉은 恭愍王 때에 文益漸이 使臣으로서 元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木棉實 十餘個를 가지고와 그의 舅인 鄭天益에게 주어 裁培케 하였더니 얼마 되지 아니하여 木棉의 裁培는 마침내 全國에 퍼지게 되었다. 鄭天益은 다시 『씨아씨』와『물레』를 創案하여 비로소 棉花로 써 무명을 짜내게 된 것이니 이로부터 우리 衣料界와 經濟界에 큰 變化가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