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美術·王藝와 音樂·伎戲
(가)『美術』 高麗의 美術은 獨特한 發達을 보인 것이 적지 아니하다. 當代 建築의 遺物로서 남아 있는 것은 二三의 木造建物 以外에 石塔따위 뿐이어니와 【浮石寺의 無量壽殿】 特히 浮石寺의 (榮州) 無量壽殿은 高麗 中 末頃의 것으로서 우리 나라의 木造建物로는 가장 오랜 것이다. 그 構造의 自由로움과 形態의 莊重雄勁한 품은 實로 당대建築의 精華라 할 것이며 彫刻에 있어서는 灌燭寺의 (恩津) 彌勒佛과 같이 雄大한 것도 있거니와(光宗 十九年에 시작하여 二十八年의 歲月이 걸린 것이니 높이 約六十五尺으로서 우리나라 最大의 石像임) 浮石寺의 木彫彌勒像은 堂堂한 姿勢에 溫和하면서도 雄偉한 體相을 갖추어 實로 當代의 藝術을 代表할만한 傑作이다.
그림(畵)은 지금까지 傳하는 遺物이 매우 적으나 浮石寺 祖師堂의 壁畵, 開豐郡 水落洞 古墳의 玄室壁畵, 恭愍王의 天山大獵圖 等이 가장 著名한 것으로 當時의 優秀한 畵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文人畵로서 이른바 四君子도 또한 行하였었다. 그리고 高麗의 畵家로는 中期의 李寧과 末期의 恭愍王이 代表라 할 것이다.
【歐陽詢體 松雪體(蜀體)】그림과 아울러 글씨도 또한 보암직한 것이 있나니 書體로는 新羅 以後로 대개 唐의 歐陽詢體가 流行하다가 高麗 末頃부터서는 元의 趙孟頫의 書法이 (松雪體 또는 蜀體라고도 함) 王室과 上流社會에 차차 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書家로는 中期의 洪灌 坦然, 後期의 李嵒 韓脩 等이 가장 이름이 높다.
(나)『工藝』工藝의 遺物로서 鍾, 香爐, 佛具, 鏡, 食器, 佩飾品, 文房具 等이 적지 아니 남아 있거니와 特히 高麗 瓷器에 이르러는 世界에서 比類가 없을 만큼 發達이 있었다. 華麗하면서도 典雅한 솜씨와 瑩潤한 色澤과 完整한 形態와 아담한 紋樣 等은 實로 空前絶後의 藝術이었나니 【靑瓷象嵌】 그 가운데에서도 靑瓷象嵌은 高麗의 創意에서 생긴 것으로서 實로 高麗 靑瓷의 精華이다.
(다)『音樂·伎戲』 音樂은 雅樂과 俗樂으로 나눌 수가 있나니 雅樂은 宮中 儀式에서 쓰는 것으로서 在來 音樂에 宋의 大晟樂 等을 加味한 것이며 俗樂은 一般民衆 사이에 行하였다. 그리고 演劇 雜戲며 伎樂 舞踊 各種 탈춤도 널리 行하였고 【擊毬】 國技로는 擊毬를 들 수가 있나니 都城 안에는 國家施設로서 廣大한 毬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