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壬午軍亂
【舊軍人의 不平】 開化의 바람이 軍制우에 불어 舊營門을 폐하고 新營을 두어 新式軍隊를 訓練시키게 된 것은 위에 이미 말한 바어니와 業을 잃은 舊軍人들의 閔氏에 對한 不平은 자못 컸고 게다가 그들의 給料는 여러 달 받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高宗 十九年 壬午 六月에 그들에게 밀린 給料 中 겨우 一個月分을 태워 줄 새 쌀의 品質이 좋지 못하고 (모래가 섞였다고 傳함) 數量도 대단히 不足하였다. 舊軍人들은 怒氣가 충천하여 倉吏와 말다툼을 하다가 일이 벌어져 그 중 몇 사람이 잡혀 가치매 【舊軍人의 反亂】 軍人들은 責任者인 宣惠廳堂上 閔謙鎬에게 억울함을 애소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더욱 激憤하여 드디어 일제히 亂을 일으키니 閔氏를 仇敵視하던 大院君은 이를 기회로 삼아 뒤에서 은근히 부채질 하였다.
【日本公使逃亡】 그리하여 亂軍은 軍器庫로 몰려가 軍器를 끄내가지고 閔氏네의 집을 습격하며 新式敎練官 堀本禮造를 죽이며 또 西大門 밖 日本公使舘을 습격하매 公使 花房義質은 仁川으로 도망하여 英國 測量船을 타고 本國으로 돌아갔다. 【閔妃避亂】 亂軍은 이튼날 다시 몰리여 大闕을 犯하여 闕內에 숨었던 閔謙鎬 等을 打殺하고 장차 閔妃를 弑害하려 하니 閔妃는 變服하고 宮을 나와 忠州로 亂을 避하였다.
【大院君再起】 大院君은 이 變을 듣고 곧 入闕하여 亂軍을 鍊撫하고 王命에 依하여 時局을 수습하는 重責을 맡으니 十年間 세도를 잃었던 大院君은 또다시 政權을 잡게 되고 따라 文武 要人들의 변동이 생기게 되었다. 閔氏黨은 이로 因하여 큰 打擊을 받았으나 그들의 策動은 매우 機敏하여 이때 天津에 가 있던 金允植 等에게 기별하여 淸國의 援助를 請하였다. 【淸國來援】 淸國은 이때 조선의 內政을 干涉할 機會를 엿보고 있던 터이라 吳長慶 馬建忠 丁汝昌 等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와 大院君을 잡아가고 조선 政治에 干涉의 손을 대는 한편 밖으로 「朝鮮은 本來 中國의 屬邦이라」 宣言하였다. 【濟物浦條約】 日本公使 花房義質은 軍艦을 타고 와서 앞서 軍亂의 責任을 質問하여 드디어 濟物浦條約을 맺고 賠償金 五十萬兩을 물리고 亂軍의 괴수를 죽이고 또 修信使 朴泳孝를 보내어 謝過의 뜻을 표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