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三編 近世(李氏朝鮮)

近世의 後期(國紀 4058年-4243年 英祖元年-純宗末)

後期는 第二十二代 英祖 元年(國紀 4058 西紀 1725)으로부터 第二十七代 純宗 末年(國紀 4243 西紀 1910)까지의 約 一百 八十 六年間을 劃한 것으로 이를 또 둘로 나누어보면 英祖로부터 第二十五代 哲宗 末(國紀 4196 西紀 1863)까지의 約 一百 三十 九年間을 前一期, 第二十六代 高宗 元年(國紀 4197 西紀 1864)으로부터 純宗 末까지의 約 四十 七年間을 後一期로 볼 수 있다.

【前一期】 前一期 中의 英祖 正祖 兩代 동안은 近世後期에 있어 가장 特色이 있는 時代로 일종의 文藝復興的 氣運이 濃厚하던 때니 舊文化의 精華를 再現함은 勿論이요 西來 新交化의 浸入으로 學界와 思想界가 多彩多異한 觀을 띄우게 되었다.

그러나 黨爭에 있어서는 소위 蕩平策을 썼음에 不拘하고 뿌리는 그대로 든든하여 큰 變化가 없이 내려오던 중 國戚이 차차 머리를 들고 政權 獲得에 熱中하매 거기에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純祖 初로부터는 뚜렷한 外戚의 「勢道政治」가 열리어 王이 갈릴 때마다 「勢道」는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政治는 밖으로 물결쳐 들어오는 西敎 西學에 對하여 여러 차례 大彈壓을 加하여 世界 大勢에서 逆行의 길을 밟았고 안으로는 賄賂(희뢰)와 誅求가 公公然하게 行하여 中央의 政治와 地方의 行政이 한가지로 흐려지매 稅制는 紊亂하여지고 民衆은 生活에 脅威를 받아 動搖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民衆은 마침내 武力에 依한 反亂 혹은 暴動과 또는 思想에 依한 革新運動을 일으키었다.

【後一期】 後一期에 있어서는 高宗의 卽位와 同時에 大院君의 攝政이 시작되어 一時 果斷있는 革攻의 政治를 하였으나 역시 그는 外勢에 눈이 어두어 무서운 鎖國策을 固執하다가 閔氏와의 葛藤으로 마침내 下野하고 그 대신 閔氏의 勢道가 시작되매 나라를 開放하여 日本을 비롯하여 諸外國과의 修交와 通商을 텄었다.

이로부터 國內 一部社會에 開化運動이 일어났거니와 新文化 新制度 新組織을 急務로 하는 新進改革派와 이와 反對되는 守舊派와의 사이에 또 鬪爭과 反目이 생기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政敵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外國의 勢力을 利用하다가 도리어 外國勢力의 侵入을 誘致하여 半島로 하여금 諸外國勢力의 爭衝地로 化하게 하였다. 淸日이 여기서 衝突되고 露日이 이 때문에 戰爭을 일으켜 결국 日本의 勝利로 朝鮮은 그 칼 도마우에 올라앉아 마침내 그의 料理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동안 民衆들은 民族的 意識에 불타올라 內部的으로 覺醒運動과 外部壓力에 對한 反抗運動이 일어났었다. 나라가 亡한 뒤에도 이러한 運動은 늘 계속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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