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이 패해 경상도로 달아나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등이 심유경(沈惟敬)의 말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보고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또한 식량 부족을 근심하여 화친하고자 하여 한양[京城]과 각지에 주재한 여러 장수에게 급히 경상도 남쪽 변방으로 퇴군하라 명하였다. 이여송(李如松)이 한양에 바로 들어서니 유성룡(柳成龍)이 이여송에게 적병을 뒤쫓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이여송이 추격할 뜻이 없었다가 일본 군사[日兵]가 멀리 갔다는 것을 듣고 비로소 문경(聞慶)까지 쫓다가 군사를 되돌렸다. 적병은 울산(蔚山) 서생포(西生浦)로부터 동래(東萊), 웅천(熊川), 거제(巨濟)까지 모두 18곳에 진을 치고 성을 축조하고 참호를 팠다. 또한 그 사이에 조선(朝鮮) 백성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장기 체류 방책으로 삼고 바다 건너 되돌아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