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결혼에 비친 근대1. 신식 결혼식과 변화하는 결혼 양상근대적 결혼 조건과 여성 생활

결혼 연령과 조건

1912년 ‘조선 민사령’에는 남자 만 17세, 여자 만 15세라야 결혼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이후 계속 1920년대 언론은 적정 혼인 연령을 보통 20세 이상의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전한 성인이라야 독립과 결혼 생활이 가능하고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연령으로 보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25세 이상을 표준으로 결혼 적정기라고 권장하기도 하였다.247)

일제강점기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1925년 16.7세, 1930년 17.0세, 1940년 17.5세였다. 미미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의 초혼 연령은 높아 졌고 도시 여성은 평균보다 두 살 정도 높아 1925년 18.6세였다.248) 대체로 경제 형편이 좋은 여성일수록 초혼 연령이 높았던 것도 교육과 취업 기회가 많았던 데 기인한다.

반면 부부간의 나이 차이는 흔히 나이가 많은 부부일 때 여자가 2∼3세 연상인 경우가 나타나는가 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8∼9세 많은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2∼3세 차이거나 동갑도 있어 자유결혼을 지향한 부부 사이에는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혼은 여전히 농촌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대개 하층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나, 도시의 남성은 오히려 40세에 가까운 만혼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은 25∼27세, 여성은 18∼19세 또는 25∼26세로 남녀 간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여성지에 소개된 30년대 후반의 신여성 부부에 관한 일부 사례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249)

또한 일제는 일본의 민법을 적용하여 계출혼주의(屆出婚主義)를 표방하였으나 민법은 결혼식을 한 후 부부 생활 몇 해 뒤에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국민의 실제 생활과 맞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1934년 개정 민법에서는 관습상 인정된 혼례를 거행함으로써 결혼이 성립된다는 사실혼주의(事實婚主義)가 다시 채택되었다. 사실혼 인정은 그나마 남성의 중혼(重婚)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일정한 방패가 되기도 하였다.

1920년대 결혼 방법은 여러 사례를 보면 순수하게 중매로 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신여성은 자신이 상대를 결정하는 연애결혼과 부모에 따르는 중매결혼의 장점을 취하자는 절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유롭고 건전한 남녀 교제가 행복한 결혼과 원만한 가족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상당히 확산되고 있었다.

[필자] 신영숙
247)논설 「혼인 문제와 민중 보건」, 『조선일보』 1929년 5월 10일자.
248)이애숙, 「여성, 그들의 사랑과 결혼」,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 2, 역사 비평사, 216쪽.
249)신영숙, 「일제하 한국 여성 사회사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89, 57∼61쪽. 1936년부터 1940년 사이의 조사에 따른 내용이 주된 것으로 제시한 통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