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결혼에 비친 근대1. 신식 결혼식과 변화하는 결혼 양상근대적 결혼 조건과 여성 생활

결혼에 따른 여성 생활

앞의 1930년대 잡지의 신여성 부부 사례에 나온 부부의 직업은 먼저 남편 이 의사·교수·사업가에서 예술가·학자 등의 순으로 나타나며, 부인의 경우는 교사·성악가·의사·작가가 있는데, 여의사는 남편도 의사인 경우가 많고 교사의 경우는 남편의 직업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았다. 성악가나 작가의 경우는 일반적인 직업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다. 그리고 가계가 비교적 안정된 가정일수록 부인은 은퇴하여 집안에 있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이는 신식 결혼 후에도 가정생활에서는 여전히 사회가 현모양처 여성에 익숙함을 보여 주는 일례라 하겠다.

신가정을 추구한다고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자녀의 수는 5∼6명이 보통이고, 2∼3명인 경우는 이후 더 낳을 수 있는 연령으로 생각되는데, 남녀 구별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단 남아 선호 문제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진 것 같지 않다. 그보다 직업여성은 자녀 교육을 대부분 시부모에 의존하여 대가족을 이루었으며, 대체로 유모와 식모 또는 안잠자기·아이보기 등 가사 사용인을 두어 가사를 면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양식 문화 주택에 커튼을 드리우고 피아노 등이 있는 집에서 가족 동반으로 양식 파티, 여름휴가, 외출 등을 즐길 수 있는 것을 근대식 ‘스위트 홈’으로 여겼다.

한편 조선 말 천주교의 영향으로 순결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했다고 속이는 가짜 결혼이나, 앉은뱅이 행세 또는 삭발로 결혼을 결단코 거부하는 처녀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기혼녀들이 남편과의 부부 관계를 거부하기 위해 집에서 도망 나오거나, 부부가 순결을 지키며 오누이처럼 지내기도 하는 이른바 ‘동정 결혼’의 예도 있었다. 이와 같이 여성들은 자신이 원치 않는 결혼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갖 꾀를 써서, 부모의 뜻에 따라 무조건 시집갔던 종래 여인들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필자]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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