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1. 성균관학생의 교제와 활동

학생 자치회

성균관에는 학생들의 자치 조직인 재회(齋會)가 있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은 재회를 통해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며, 유생 자체의 문제는 재회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하였다. 학생회 조직인 재회의 임원은 장의(掌議), 상색장(上色掌), 하색장(下色掌)이 있었는데, 동재와 서재에서 한 명씩 선출하였으므로 모두 6명이었다. 동·서재의 장의는 가문과 신분이 뛰어난 사람을 뽑았으며, 재회의 대표 역할을 하였다. 새로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한 사람 가운데에서 문벌 있는 사람으로 한 사람씩 동·서재의 하색장으로 삼았고, 이전에 성균관에 입학해 있던 사람 중에서 동·서재의 상색장을 뽑았다. 임원을 선출하는 특별한 기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대개는 유생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이나 가문이 좋은 사람이 선출되었다. 재회의 임원은 봄가을에 석전(釋奠)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교체하였다.

재회의 임원은 학생을 대표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성균관에 정원 외로 입학할 수 있었고, 식당에도 인원에 구애되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으며, 특히 장의는 자기 방이 따로 배정되었고, 성균관 유생을 관직에 천거할 때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장의의 권위는 대단하여 유생들이 두렵게 여겼다는 것을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장의가 향교(香橋, 성균관 입구에 있는 다리)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오면 서너 명의 성균관 노비들이 분주히 모신다. 동·서재의 색장이 앞에서 인도하고 뒤따르는 재직이 무리를 이룬다. 앞에서 “물렀거라.” 하고 외치고 뒤에서 옹위(擁衛)하니 무슨 벼슬인가. 반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유건(儒巾)을 바꾸어 쓴다. 소리쳐 물리치면 여러 유생들 문을 닫고 움츠리고, “창문을 여시오.” 외치는 곳에 소리가 길다.98)

장의를 비롯한 임원은 유생이 모두 모인 재회에서 선출하지만, 장의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전임 장의 3명의 추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개 선임자의 추천으로 뽑혔다. 재회가 소집되면 장의가 추천된 여러 유생 가운데에서 자신이 뽑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조사가 추천된 유생의 명단을 모두 쓰지만 가장 윗자리에는 장의가 추천한 유생의 이름을 적는다. 추천된 유생의 명단이 작성되면 재회에 참석한 모든 유생이 자신이 뽑으려는 사람의 이름 밑에 점을 찍는다. 하지만 장의가 호명하였던 사람의 이름이 맨 위에 기록되고, 장의가 가장 먼저 그 이름 밑에 점을 찍으면 다른 유생들은 감히 다른 이름에 점을 찍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장의가 추천한 사람이 임원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임원 선출 방식 때문에 문벌 있는 집권층의 자제가 임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조선 후기에는 장의가 권한을 남용하기도 하고, 임원을 당파에 따라 분배하는 등 파벌이 조성되는 사례가 자주 나타났다. 이에 영조 때에는 유생 중에서 사조(四祖) 동안 관직을 지내지 않은 사람으로 임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재회의 규칙을 개정하였다. 유생들 사이에 정치적 파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정조 때에는 동재의 장의와 색장은 소론 중에서, 서재의 장의와 색장은 노론 중에서 선출하여 처음부터 당파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 되었다.

[필자] 이승준
98)윤기, 앞의 책, 192∼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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