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 사회의 도서관 기능
책의 보급과 열람이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서원에서는 서적을 수집하여 보관하였고, 자체적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유력한 서원은 정기적으로 필요한 책을 간행하였는데, 간행 경비는 서원전(書院田)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충당하거나 드물게 감사나 수령, 독지가(篤志家)가 보조하기도 하였다. 직접 서원에서 간행하는 것 이외에도 사액 서원에는 왕이 서적을 하사하기도 하였으며, 국가에서 서적을 간행·배포하거나 국가 장서에 여유가 있을 때에 별도로 서적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관찰사 또는 지방관의 조처로 서적이 지급되기도 하였다.
서원 장서 관리에 대해서는 각 서원의 운영 규칙인 원규에 따로 기입하였을 정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황이 지은 「이산서원 원규(伊山書院院規)」에는 서적을 서원 밖으로 반출하지 못하게 규정하였으며, 다른 서원도 대체로 이를 따르고 있다. 명종 때 세운 수양서원(首陽書院)에는 “서 적은 문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여자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문 앞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였다. 도서에 대한 엄격한 규정은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조가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빌려 보고 곧 돌려보냈던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서원이 번창하면서 책이 많이 출판되었고, 현재에도 서원에는 여러 목판본이 보존되어 있다. 서원에서 책을 간행하고자 의결하면 곧 이를 담당할 간역소(刊役所)가 열린다. 서적 출판 비용은 간역소에 딸린 전답에서 모아 놓은 비용과 향촌 각 문중의 출자로 감당한다. 그리고 서적 간행을 위한 임원을 따로 선출한다. 여러 해가 걸리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서적의 간행은 서원 한 곳만이 아니라 전 고을 또는 하나의 도에 이르는 큰 사업이었다. 한 자, 한 획에까지 정성을 쏟는 서적 간행 작업은 그것 자체가 유생에게 교훈적인 의미를 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