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3. 서원교육 형태

순제와 백일장

순제는 유생들에게 문제를 내주면 집에서 시부(詩賦)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며, 백일장은 시험장에서 시부의 실력을 겨루는 것으로 봄여름에 개설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원임과 유생들이 유회를 열어 순제나 백일장을 열 것을 결정하고 통고하였다. 백일장은 서원이나 향교 또는 관아 앞 공터 등의 장소를 지정한 후 실시하였고, 순제는 제목을 양반들에게 통보하고 제출 기한을 알려 주었다. 순제와 백일장은 관아(官衙)나 유림들이 개설하였다. 관아에서 돈을 들여 개설하면 관아 근처 공터나 향교, 양사재(養士齋), 서원 등을 이용하였고, 유림들이 개설하면 서원뿐 아니라 향교, 양사재 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백일장 답안지>   
19세기 초 왕학준(王學準)이 남원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제출한 답안지이다.

순제는 시와 부, 사서오경의 의문과 뜻풀이를 문제로 삼아 열흘이나 보 름의 시간을 주었고, 기한에 맞추어 제출한 답안지를 원임과 서원 위촉 시험관이 평가하였다. 성적 평가는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의 9등급 또는 과거 시험처럼 14등급으로 나누어 성적에 맞는 점수를 합산하여 석차를 매긴다. 성적 우수자에게는 지필묵을 차등 지급하였으며, 순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유생 명단과 성적을 『순제방목(旬製榜目)』이라는 책자로 작성하여 보관하였다. 백일장은 공공장소에 일제히 모여 하루나 이틀 정도 글을 겨루는 것인데, 여기서도 역시 답안지를 평가하여 성적 우수자에게는 지필묵, 나머지 방목에 든 사람에게도 종이 등의 상을 주고 『백일장방목(白日場榜目)』을 작성하여 보관하였다.

서원에서는 순제나 백일장 우수자에게 거접 참여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 서원의 재정이 어려워 거접이나 강회 개설이 불가능할 때 차선책으로 순제와 백일장이 열린다. 상품만 내리면 되므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원 가운데 교육을 순제에 치중하여 유림이 만든 장학계(奬學契)의 수입으로 상을 마련하는 곳도 있었으며, 이도 어려우면 관아에 백일장이나 순제를 요청하였다. 이렇게 순제와 백일장은 관아와 결합하여 자주 시행되었고, 자연히 이에 따른 폐해도 생겨났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조선 후기에 순제와 백일장이 시행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수령 칠사(守令七事) 가운데 세 번째가 ‘학교흥(學敎興)’인데 속된 아전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과거 시험을 그것이라 생각한다. 한 고을을 통틀어 순제에 응할 만한 사람은 유생들이 많은 읍이라야 수십 명에 지나지 않고 적은 곳은 5∼6명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험지를 거두어 보면 수가 500장에서 1,000장에 이르니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아이들까지도 남의 붓을 빌려 작성된 답안지를 제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령은 공무가 번잡하여 세밀히 살피지 못하고 수령의 자제와 빈객들이 마구 채점하고, 시 중드는 사람이나 수령이 가까이 하는 기생까지 급제를 날조하여 잔치를 벌이네, 상을 주네 하며 혼잡을 떤다. 수령에게는 흙덩이, 돌덩이가 날아들고 욕설이 퍼부어지며, 이에 수령은 유생들을 결박하니 이는 조용한 세상에 환란(患亂)을 일으키는 것이다.

백일장 역시 백성에게 폐단이 되고 있다. 읍에서 수십 리 밖에 사는 사람들은 시일 전에 읍에 들어가야 되는데, 오고가는 데에 드는 술값·밥값·담뱃값·짚신값에 종이값·붓값·먹값까지 합치면 두 사람이 응시하는 집에서는 100전이 넘는다. 가령 한 집에서 5∼6명이 백일장에 응시하는 경우에는 비용이 300전이나 되는데, 이것은 송아지 한 마리 값이다. 백일장의 방이 나붙으면 어린것들이 솔깃하여 들뜨는데, 가난한 늙은이로서는 자식을 막지 못하고 백일장의 영이 내릴 때마다 얼굴이 절로 찡그려지니, 과거 시험의 병폐로 백성이 받는 고통이 견디기 힘든 정도이다.131)

서원 교육의 중심은 거접과 강학으로 여겼으나, 과거 준비를 위하여 공부하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만큼 조선 후기에 순제와 백일장은 관청과 결합하여 지방의 예비 과거 시험쯤으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임하영
131)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禮典), 과예(課藝).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