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조선시대의 관학과 사학은 별다른 구별이 없었다. 원생들에 대한 평가는 주로 출석과 강에 대한 것으로 하였다. 출석 평가의 경우 성균관의 원점 제도처럼 아침저녁으로 출석을 확인하는 번거로운 제도는 없었다. 원래 서원 설립 목적인 ‘학칙과 관의 명령이나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살리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원에도 출석을 확인할 수 있는 도기 제도는 있었다. 또한, 아는 것에 대한 실천과 자기 수양을 중시하는 만큼 원생 각자가 일종의 생활 기록부인 선악 양적(善惡兩籍)을 만들었고, 때에 따라 서원에서 축출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 원생 스스로 힘써 평가하는 것이 중요시되었다.
강에 대한 평가는 대통-통-약통-조통-불통의 5단계 또는 통(通)-약(略)-조(粗)-불(不)의 4단계로 하였다. 대통은 구두에 밝고 설명에 막힘이 없어서 책 한 권의 취지를 두루 알고 다른 책에까지 미치어 매우 밝게 알고 철저하게 통하는 경우이다. 불통은 낙제를 의미한다. 규칙을 어기거나 기강을 어지럽히고, 결석을 자주 하거나 불통을 맞아 낙제하면 서원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서원에서 쫓겨나는 것은 당연히 원생에게 엄청나게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으며, 향촌 사회의 빈축을 사고 다른 유림들과 정상적인 교류를 할 수 없었다.
[필자]
임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