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1. 식민지 교육 정책의 변화

제1차 조선 교육령(1911∼1922)

일제의 식민지 교육은 이른바 ‘시세(時勢)와 민도(民度)’에 맞는 기초 수준의 저급한 교육으로, 제국 신민(臣民)의 자질과 품성을 견지(堅持)하여 기초 실무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 배양에 주안을 두었다. 이는 고급 인력 양성보다는 실용인을 양성하여 식민지 정책의 수행자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911년에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각 도의 지방 장관에게 훈시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금후 조선의 교육은 오로지 유용한 지식과 온건한 덕성을 함양하여 제국 신민된 자질과 품성을 갖추게 하는 것으로써 주안을 삼아야 한다. 따라서 먼저 보통 교육의 완비를 기하고 또한 중점을 실용 교육에 두어야 한다.179)

훈시를 통해 장차 조선 교육을 식민화할 방향을 제시하였고, 이후 1911년 8월 23일 제1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함으로써 이를 현실화하였다. 특히, 조선 교육령 제1장 제1조와 제3조의 “교육은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터하여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을 본의로 한다.”, “교육은 시세와 민도에 적합하게 한다.”를 통해 일제의 교육 정책의 본질이 차별 교육에 바탕을 둔 동화 교육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1912년 4월 30일 신임 일본인 교원에 대한 총독의 훈시에도 잘 나타난다.

금일의 조선은 고상한 학문을 조선 사람에게 급히 시킬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오늘날은 비근한 보통 교육을 베풀어 한 사람으로서 일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데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학교는 이 목적으로 교육을 행하여 졸업한 자가 집에 돌아가 선진자로서 동포를 지도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통학교(普通學校) 교육에서도 실업상의 교육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180)

이 때문에 조선인의 학교 수업 연한(年限)은 일본인보다 단축되었고, 학교 명칭도 ‘보통’을 붙여 구체적으로 차별하였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에도 수업 연한의 부족은 진학의 폭을 좁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였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의 식민지 교육 방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인을 일본 신민으로 육성하는 일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다. 둘째, 점진주의(漸進主義)를 취한다. 셋째, 근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넷째,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에 주력한다. 다섯째, 일본어 보급을 도모한다.

제1차 조선 교육령에 나타난 각급 학교의 교육 목적은 다음과 같다. 보통학교의 교육 목적은 “국민 교육의 기초가 되는 보통 교육을 시키는 곳으로서 신체 발달에 유의하고 국어(일본어)를 가르치며, 덕육(德育)을 베풀어 국민 된 성격을 양성하고 그 생활에 필요한 보통 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 (제8조).”로 규정되었다. 또한, 보통 교육의 성격을 “보통의 지식 기능을 가르쳐 주고, 특히 국민 된 성격을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5조).”로 제시하였다. 이 두 조항을 종합하면 보통학교의 교육 목적은 장차 성장하여 사회인이 될 조선의 아동을 일본 국민으로 만들어 일제에 절대 복종하는 조선인을 양성하고, 이를 위하여 일본어를 보급하여 일본의 정신 구조와 문화를 조선의 아동에게 주입하는 것과 초보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고등 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의 교육 목적은 “남자에게 고등한 보통 교육을 하는 곳으로서, 상식을 가르치고 국민 된 성격을 도모하며, 그 생활에 유용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제11조).”로 밝히고 있다. ‘국민된 성격’은 황국 신민(皇國臣民)으로서 일제에 충성하는 자질과 품성을 갖추는 것으로, ‘유용한 지식과 기능’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초보적인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여 지배 체제 말단 실무자로서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등 교원(初等敎員)을 양성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던 사범학교(師範學校)는 조선 교육령에 따라 폐지하고, 제14조와 제19조에 따라 관립(官立) 보통학교와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사범과 또는 교원 속성과를 설치하였다. 이는 제도적으로 교원을 양성할 때 조선인에게 저급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함이었으며, 고등 교육을 향한 조선인의 교육 욕구를 사전에 막으려는 식민지 교육 정책이었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의 시행으로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은 4년으로 정해졌으나 지방 실정에 맞추어 1년을 단축할 수 있었으며, 입학 연령은 8세 이상으로 정해졌다.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은 4년이었으며 입학 자격은 12세 이상의 남자로, 수업 연한 4년의 보통학교를 졸업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규정하였다. 사범과의 수업 연한은 1년으로 입학 자격은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자로 하고, 교원 속성과의 수업 연한은 1년 이내로 하며, 입학 자격은 연령 16세 이상으로 고등 보통학교 제2학년 과정을 수료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대한제국 시기의 학제(學制)보다 수업 연한을 단축하여 교육 수준을 낮추었으며, 사범학교를 고등 보통학교에 포함시킴으로써 고급 인력 양성을 제한하고 원칙적으로 상급 학교 진학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수업 연한이 초등 6년, 중등 5년인 일본인 교육에 비하면 조선인에 대해서는 차별 정책을 적용하였다.

<보통학교 국어 독본>   
보통학교의 국어 교과서이다.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이 시행된 시기에 일본어를 ‘국어’, 한국어를 ‘조선어’라고 이름을 바꾸고 일본어 교육 시간을 크게 늘려 한국어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보통학교 국어 독본>   

실제 교육 내용에서도 일본어를 ‘국어’라 칭하고, 수업 시수(授業時數)를 늘린 반면에 한국어를 말살하기 위해 한국어를 ‘조선어’라 칭하고, 기존의 『국어 급 한문(國語及漢文)』을 『조선어 급 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어 조선어는 국어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또한, 보통학교의 학년별 주당 수업 시수를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였으며, 기존에 외국어였던 일본어를 ‘국어’로 하고 학년별 주당 수업 시수를 6시간에서 10시간으로 크게 늘렸다. 『조선어 급 한문』 과목 역시 조선어와 한문을 통합하여 한문에 비중을 둔 수업 시수 배정으로 교묘히 한국어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조선어 급 한문』을 제외한 모든 교과목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게 하였다. 보통학교 교과 편제와 시간 배당은 표 ‘보통학교 학년별·과목별 매주 수업 시수(1911∼ 1922)’와 같다.

<표> 보통학교 학년별·과목별 매주 수업 시수(1911∼1922)
교과목
학년
수신 조선어급 한문 일본어 산술 이과 창가 체조 도화 수공 재봉 급
수예
농업
초보
상업
초보
총 시간
1 1 6 10 6     3           26
2 1 6 10 6     3           26
3 1 5 10 6 2   3           27
4 1 5 10 6 2   3           27
4 22 40 24 4   12           106

고등 보통학교 역시 『조선어 급 한문』의 주당 시수가 학년당 6시간이던 것을 1∼2학년에 4시간씩, 3∼4학년에 3시간씩을 배정하여 크게 줄였다. 그리고 기존의 ‘일본어’를 보통학교처럼 ‘국어’로 개칭하고, 기존에 학년당 주당 6시간씩 배정하던 것을 1∼2학년에 8시간씩, 3∼4학년에 7시간씩 배정하였다. 또한, 한국 민족의 역사 의식, 민족 의식, 국가 의식을 말살하기 위하여 국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교과목 역시 각급 학교 교과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하였다. 고등 보통학교에서 우리나라 역사는 모두 배제한 채 역사 교과와 지리 교과 속에 일본 역사와 일본 지리를 ‘본방 역사(本邦歷史)’와 ‘본방 지리(本邦地理)’라는 이름으로 편입하여 교수함으로써 일본의 국체(國體)를 밝히는 내용과 일본의 역사적 사적(史跡)을 알리는 내용에 치중하였다. 이는 고등 보통학교 규칙 제15조 역사와 제16조 지리 과목에 제시한 교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사는 역사상 풍요한 사적을 알게 하여 세운 변천과 문화의 유래하는 소이(所以)를 이해하게 함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역사는 본방 역사와 외국 역사로 하고 본방 역사에서는 일본 국체를 명료하게 하고 외국 역사에서 는 특히 일본 국체민정(國體民情)과 상이한 소이에 설급(說及)하도록 한다.

지리는 지구의 형상, 운동, 지구의 표면, 인류 생활의 상태에 관한 지식을 습득시켜 처세상(處世上) 필수적인 사항을 지도함을 요지로 한다. 지리는 본방 지리와 외국 지리의 대요(大要)를 지도하고 또한 지문(地文) 일반도 교수한다.

또한, 실업 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농업 경제, 실업을 통합하고, 『실업 급 법제 경제』라는 교과목을 배정하여 9시간을 농업 또는 상업 시간으로 하며, 실업 교과와 유사한 과목인 수공을 배정하였다. 이와 같이 1910년대 고등 보통학교는 일본의 중학교와는 달리 실업 중심의 교육 기관으로 운영되었다. 조선인 고등 보통학교 졸업생은 마땅히 진학할 고등 교육 기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등 교육 기관에서도 조선의 고등 보통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제1차 조선 교육령기 고등 보통학교는 실업 교육 중심의 종결 교육 기관으로서 상급 학교 진학보다는 실무자 양성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일제의 차별적 교육 정책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이다.

[필자] 김태완
179)弓削辛太郞, 『朝鮮の敎育』, 自由討究社, 1923, 111∼112쪽.
180)弓削辛太郞, 앞의 책,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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