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조명되는 발해 복식
발해의 남자 복식 중 관리의 옷차림은 네 가지로 나뉘는데 의복색, 홀(笏), 물고기형을 넣은 주머니인 어대(魚袋)로 구분하여 착용하였다. 3품 이상의 관리는 자색 관복에 아홀(牙笏)을 쥐고 금어대(金魚袋)를 찼다. 4·5품은 붉은색 관복에 아홀을 쥐고 은어대(銀魚袋)를 찼다. 6·7품은 흐린 적색 관복에 목홀(木笏)을, 8·9품은 녹색 관복에 목홀을 쥐었다.
발해의 복식은 최근에 발굴되는 유물들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정효공주 묘의 벽화에 그려진 인물상을 살펴보면, 머리는 상투를 틀어 이마를 두르는 머릿수건형(말액)을 하거나, 주로 복두를 쓰고 둥근 깃의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다. 옆트임을 통하여 포 안에 내의와 바지를 착용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소매는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으며, 옷자락이 발등까지 내려 올 정도로 길다. 단령포의 색은 갈색, 적색, 청색, 자색, 흰색 등이 있으나, 같은 직분에서 서로 다른 색 옷을 착용한 점으로 보아 관복색의 규정에 따른 것은 아닌 듯하다.
방한용으로 담비나 표범 등의 가죽으로 만든 구(裘)도 착용하고 있었던 듯싶다. 허리에는 띠를 두르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가죽띠로 파악되지만, 당나라의 하사품 목록에 금대(金帶), 은대(銀帶)라는 명칭이 있고, 금·은·동·철·도금·청동 등의 재료로 만든 과대류가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과대(銙帶)도 착용하였을 것이다.
한편, 발해의 귀부인은 밑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후 그 위에 소매통이 넓은 포와 반비 계통을 입고 그 위에 또 표를 걸쳤다. 이는 당시 당나라의 부인복과 같은 형태였으리라 생각된다. 평민 부녀는 우리의 기본 복장인 바지, 저고리, 치마를 입었고 예복으로는 포도 착용했으리라 생각된다. 발해 여성은 높은 머리나 쌍계(雙髻), 혹은 뒤로 늘어뜨려 땋은 머리를 주로 하였다. 나무·대모·상아·골각(骨角) 등으로 만든 빗을 머리에 꽂아 장식하기도 하였고 관(冠)을 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