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1. 머리치장

의녀의 가리마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가리마(加里磨)를 쓰는 여인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가리마는 편지 봉투(書套)처럼 생겨서 머리를 덮는다고 되어 있다. 궁중에 소속되어 각 방의 물 긷기, 불 때기 등의 잡일을 맡아 하던 신분이 낮은 무수리나, 내의원(內醫院)과 혜민서(惠民署) 의녀(醫女)와,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에 있는 침선비(針線婢)는 지방에서 차출한 기생들로 잔치가 있을 때 노래와 춤을 추었다. 무수리, 침선비, 기생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하여 머리에 가리마를 썼다. 내의원의 의녀는 검정색 비단으로 가리마를 만들고, 그 외 사람들은 거친 검정색 베로 만들었다. 방언으로는 멱(羃)이라고 한다.374) 가리마는 요즈음 대학 졸업식 때 쓰는 사각모를 길게 하여 납작하게 접어 만든 형태이다.

<후원유연(後園遊宴)>   
계단이 있는 후원 한쪽 구석에서 선비들이 의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18세기 그림이다. 가리마는 기생들이나 의녀들이 쓰는 모자의 일종이다. 그림에서는 후원에서 가야금을 타고 있는 의녀가 쓰고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   
문인 화가인 조영석이 그린 그림이다. 17세기 편지 글에 등장하는 여염집 부인의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가리마로 추정되는 쓰개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은 가리마는 풍속화에 주로 기생들이 쓰고 있어 신분이 낮은 사람의 모자로 인식되었으나, 17세기의 편지 글에 보면 반가(班家) 여성들 의 성장용(盛裝用) 머리쓰개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의 조카인 곽주(郭澍)는 부인 진주 하씨(晋州河氏, 1580∼1646 추정)에게 “아주버님이 오늘 가실 길에 우리에게 다녀가려 하시니, 진지도 옳게 잘 차리려니와 다담상을 가장 좋게 차리게 하소. 자네를 보려고 가시니, 머리를 꾸미고 가리마를 쓰도록 하소.”라고 당부하고 있다.375) 18세기 기생들이 가리마를 쓴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조영석(趙英祏, 1686∼1761)이 그린 절구질하는 여인이 쓴 머리쓰개가 혹 곽주의 부인 진주 하씨가 살았던 시기의 가리마는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필자] 송미경
374)유득공, 『경도잡지』 권2, 풍속(風俗), 성기(聲伎).
375)이은주, 「17세기 전기 현풍 곽씨 집안의 의생활에 대한 소고」, 『복식』 51권 8호, 2001,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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