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여자여 외출하라3. 근대의 무지개 아래, 소비하는 식민지 여성

백화점, 소비의 천국

한 장소에서 소요의 여러 가지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상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종일을 두고 보고만 나와도 꾸지람하는 이가 없는 것, 휴게, 음식, 용변 그 밖에 조금의 불편도 없을 만한 설비 등등에 있어서 중소 상업은 도저히 백화점의 적이 못 되는 데다가 백화점은 대자본 경영인 까닭으로 대량매입과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고로 백화점의 진출과 그 수의 증가는 중소상에 대해서는 치명상이 되는 것이다.52)

공장에서 다량의 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상품을 전통적인 상품 공급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반응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백화점이다.53)

<유행과 소비>   
여성들은 강고한 남존여비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의 대중문화를 향유하면서 쾌락으로서의 소비를 실천하였다. 그들은 사회적 비판 속에서도, 헤어스타일, 구두, 시계, 목도리, 양산 등 외모와 의복, 장신구의 유행을 소비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냈다.

백화점은 대중이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의 방식과 의미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왜냐하면 백화점은 일정한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차별화·동질화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정찰제를 채용하였기 때문에 입씨름과 흥정이 사라졌고, 구매의 의무 또한 소멸되었다. 상품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백화점을 즐길 수 있었고, 돈만 있다면 누구나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백화점의 거래 방식은 상인이 보여 주는 상품의 범위 안에서 상인이 제시하는 가격을 놓고 상인과의 길고도 험난한 흥정을 거쳐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던 전통적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일괄적으로 관리되는 수십 개의 판매대에서 필요한 상품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고, 각종 서비스의 제공, 정찰제의 실시, 상품권·구매권 발매 등 소상인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업 기법을 도입하고 있었다.

백화점은 순식간에 근대적인 도시 소비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에만 여섯 개의 백화점이 설립되었는데, 1920년대 중반부터 백화점으로서의 영업이 본격화되었다.54)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나 백화점에서 이루어지는 구매 행위는 특별한 문화적 의미를 지녔다. 백화점은 상품을 상징적 기호로 변모시켰으며,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징과 의미를 소비하였다.

<화신 백화점 전경>   
조선인 상가인 종로에 자리 잡은 화신 백화점은 조선인 자본으로 설립된 백화점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인 식자와 고객으로부터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화신 스스로도 그 점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지만, 일제 지배하의 식민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화신 백화점 매장>   
화신 백화점의 주단 포목부(綢緞布木部) 모습이다. 백화점에서 구매는 의무가 아니다. 그저 물건을 구경하기만 해도 비난받지 않았고, 구매할 경우에도 정찰제를 채용하여 입씨름과 흥정이 사라졌다. 백화점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대중적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돈만 있다면 누구나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미쯔꼬시에서 좋은 오바코트 사 입고” “화신 백화점 5층에 가야만” 파는 교복을 입었으며 “화신 백화점 가서 브라질이냐 어디냐 …… 원두커피 갈아다가 꼭 먹었을” 뿐 아니라, 축하할 일이 있으면 “문화적으로 발달된” 음식을 파는 “화신 백화점 5층에 가서 맛있는 거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55) 남다른 부귀의 실감과 행복의 경험은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직결되어 있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 카페>   
백화점은 근대적 공간으로서 상징의 소비라는 새로운 차원의 만족을 제공하였다. 백화점에서의 소비 경험, 백화점의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은 차별화된 지위와 행복을 상징하였다.
<미쓰코시 백화점 개점 광고>   
『조선일보』 1930년 10월 24일자에 게재된 미쓰코시 경성 지점 개관 광고이다. 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은 미쓰코시 오복점(吳服店)으로 출발해서, 1929년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 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옛 경성부 청사 자리에 1930년 10월에 연건평 2,000평 규모의 매장을 신축·완공했는데, 이 매장은 현재 신세계 백화점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상품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가격으로 상품이 상징하는 의미를 구매할지 말지를 정하는 수동적 위치에 놓였다. 대신에 백화점은 일정한 구매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접하며 동등한 사치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환상의 공간이 되었다.56) 사람들은 승강기에 혹하고 백화점에 미쳐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몰려들었다.

[필자] 허영란
52)서춘, 「피폐한 중소 상공 원인과 그 대책」, 『신동아』 10, 1932년 8월, 12쪽.
53)피터 코리건, 앞의 책, 96쪽.
54)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은 1906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의 경성 출장소인 미쓰코시 오복점(三越吳服店)으로 출발하였다. 초창기에는 수입 잡화 상점의 형태였으며 1929년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 지점으로 승격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경성부 청사가 옮겨간 자리에 1930년 10월에 연건평 2,000평 규모의 매장을 신축·완공하였는데 이 매장은 현재 신세계 백화점의 본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구 미도파 백화점(현 롯데 백화점 영플라자)의 전신인 조지야(丁字屋) 백화점은 1921년에 설립되어 1939년에는 남대문로에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였고,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이 1922년에, 히로다(平田) 백화점이 1926년에 설립되었다.
55)구술 정재영·면담 송도영, 앞의 자료, 22쪽, 29∼33쪽.
56)피터 코리건, 앞의 책, 9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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