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미술과 시장3. 광복 이후의 미술 시장

개발 경제 시기 미술 시장의 활성화

[필자] 권행가

1970년대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高度成長)의 길을 치닫던 시기에 미술계도 미술 외적인 여건이 전반적으로 변화되었다. 우선 정부 차원에서 1972년 ‘문화 예술 진흥법’이 제정되고 1974년부터 제1차 문예 중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59억의 예산이 책정되었으며, 민족 기록화(民族記錄畵) 제작 사업, 민족 위인 영정이나 동상 제작 사업 등을 발주함으로써 작가들의 새로운 수입원 역할을 해주었다.260)

경제적으로는 기업 중심의 지나친 고도성장이 추진되면서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전태일 분신 자살 사건(全泰壹焚身自殺事件)으로 상징되는 노동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시기였으나, 미술계는 이와 별도로 호황을 누린 시기였다. 즉 신흥 부르주아지 계층이 등장하고 교육 받은 문화 향수층이 형성되면서 미술 수요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였으며,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 화랑가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미술품 관련 출판물이 대거 등장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변변한 미술 전문 잡지 하나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던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계간 미술』, 『선 미술』, 『미술과 생활』, 『꾸밈』, 『디 자인』, 『미술 춘추』 같은 잡지가 대거 발행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미술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비평가층의 형성뿐 아니라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과 취향, 미술 시장의 흐름까지도 저널리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상호 연동하는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 미술 시장의 특징은 첫째 화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화랑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單線的)인 미술 시장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둘째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저렴하던 작품 가격이 1970년대 중반부터 급등하면서 미술품이 투기의 대상으로까지 부각된 첫 시기였고 이를 주도한 것이 동양화였다는 점, 셋째 비록 화랑이 미술 시장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나 1990년대까지 고질적 문제가 된 작가의 직거래(直去來), 이중 가격제(二重價格制), 호당 가격제(號當價格制) 같은 미술품 유통 구조의 왜곡상이 만들어진 시기였다는 점이다.

[필자] 권행가
260)민족 기록화 사업은 1차 4,300만 원, 2차 3,300만 원, 3차 3,2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문화인 25시」, 『경향신문』 1975년 5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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