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미술과 시장3. 광복 이후의 미술 시장개발 경제 시기 미술 시장의 활성화

취향의 변화

1981년 미술 잡지 『계간 미술』에는 ‘한국적 회화미 정립에 앞장선 7인의 거장을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이경성과 최순우의 대담이 실렸다. 이 대담에서 1970년대 미술 시장의 대표 작가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는 한국적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융합시킨 대표적 거장으로 평가를 받았다.275) 이어서 1985년 현대 화랑과 동산방 화랑이 공동 기획한 회고전 청전·소정전(靑田·小亭展)에서 이상범과 변관식은 우리나라 근대 산수화의 두 전형(典型)이라는 위치가 부여되었으며, 같은 해에 현대 화랑이 기획한 박수근 20주기 기념전(朴壽根二十週忌紀念展)을 통해 박수근은 미술 시장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예는 1970년대 후반 미술 시장의 호황 속에서 부각된 일부 작가가 1980년대 들어서서 우리나라 근대 미술사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화랑의 기획전과 작가에게 붙여지는 수식어와 미술사적 가치 평가는 이처럼 혼재된 채 작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틀을 만들어 갔다.

1980년 제5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통행금지 폐지, 해외여행 자유화 등 좀 더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술 시장의 경기는 상대적으로 침체되었다. 따라서 제2의 미술 시장 호황기가 시작되는 1988년 이전까지는 전반적으로 1970년대 마련된 미술 시장의 구조가 큰 변화 없이 확대되며 대중화된 시기로 볼 수 있다. 미술 시장의 구조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화랑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일부 작가의 작품 값 역시 계속 올랐지만 호당 가격제, 이중 가격제, 작가 직매제 같은 관행이 고질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화랑의 역할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인기 작가 위주의 상품화 경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고미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동양화 일변도였던 고객의 취향이 서양화로 서서히 옮겨 가면서 시장 판도가 달라진 시기이기도 하다. 인사동과 장안평의 고미술품 상가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 문을 닫는 화랑이 속출하였으며 작품 가격도 20∼30%가량 하락하였다.276) 이런 현상은 1970년대에 고객들이 집안 장식을 위해 고미술품을 대거 사들였던 고미술품 장식 유행 풍조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1970년대 대거 개발된 도심의 아파트가 중산층 이상의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 잡자 고객의 취향은 고미술품과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바뀌었다.277) 아파트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자 계층 상승을 부추기는 욕망의 대상으로 등장하면서 고객의 취향 역시 변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광복 이전부터 1970년대까지 미술 시장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였던 동양화는 그 자리를 서양화에게 내주게 된다.

<여성 잡지 광고 속의 실내 공간>   
『여원』 1977년 2월호에 실린 패션 화보이다. 1970년대 스타였던 고은아를 모델로 한 패션 화보 속의 실내 공간은 서예 작품과 고미술품, 고가구로 장식되어 있는 반면 1980년대 후반의 가구 광고 속의 실내는 흑백의 모던한 공간 속에 서양화가 걸려 있다. 이것은 소비 욕망의 대상이자 부의 표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예이다. 1970년대 고미술품과 동양화 붐으로부터 서양화로의 고객의 취향의 변화는 아파트 문화가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여성 잡지 광고 속의 실내 공간>   
『여성 동아』 1987년 7월호에 실린 가구 광고이다.
[필자] 권행가
275)「한국적 회화미 정립에 앞장선 7인의 거장을 말한다」, 『계간 미술』 20호, 중앙일보사, 1981.겨울, 16∼58쪽.
276)「고미술 경기 6년째 깊은 잠」, 『중앙일보』 1986년 5월 22일자.
277)박미화, 「1970년대 이후의 한국 미술 시장과 패러다임의 변화」, 『근대 미술 연구』, 국립 현대 미술관, 2006, 241∼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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