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국왕과 그 계승자들1. 국왕 즉위식의 유형

사위

사위(嗣位)는 선왕이 사망한 다음 왕세자나 왕세손 같은 국왕의 후계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므로, 왕위의 계승이 가장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를 말한다. 조선 전기에는 정치적 격변이 잦아 선위나 반정에 의해 왕위를 계승한 경우가 많았지만 후기로 들어가면 대부분 사위에 의해 왕위를 계승했다. 조선시대에 사위에 의해 즉위식을 거행한 국왕은 문종, 단종, 성종, 연산군,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효종에서 고종까지이다.

그런데 사위란 부친이나 조부의 국상이 진행되는 도중에 새 국왕이 즉위하게 되므로 즉위식이 화려하거나 성대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오히려 전 국왕이 사망한 직후 이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가운데 정중하고도 간략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사위에 의한 즉위식은 새 국왕이 성복(成服)이라고 하여 상복을 입은 이후에 거행되므로 선왕이 사망하고 4일 내지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며, 선왕의 시신이 안치된 빈전(殯殿) 밖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따라서 국왕의 즉위식에 참석한 모든 관리는 최복(衰服)이라는 상복을 입은 상태였고, 새 국왕 역시 상복을 착용하고 있다가 즉위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만 대례복(大禮服)인 면복(冕服)으로 갈아입었다.

<정조의 국장 행렬>   
1800년 6월 28일 정조 승하 후 국장 관련 제반 의식을 기록한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의 반차도이다. 그림은 국장 행렬 가운데 정조의 상여인 대여(大轝) 부분이다.정조의 국장이 진행되는 동안 순조는 사위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즉위식장의 풍경은 식장의 동쪽에는 선왕의 유언이 놓이고, 서쪽에는 대보(大寶)가 배치되었다. 즉위식이 시작되면 면복을 입은 새 국왕이 빈전을 향하여 향불을 피운다. 이어서 영의정이 선왕의 유언을 읽어 새 국왕의 즉위가 선왕의 뜻임을 밝히고, 좌의정은 국왕의 상징인 대보를 새 국왕에게 올린다. 이어서 만세를 부르는데 의식의 진행을 맡은 찬의(贊儀)가 ‘산호(山呼)’라고 하면 모든 참석자가 양손을 들어 ‘천세(千歲)’를 외치고, 찬의가 ‘재산호(再山呼)’라고 하면 참석자들이 다시 양손을 들어 ‘천천세(千千歲)’를 외치는 것으로 행사가 끝났다. 이어서 신하들이 새 국왕에게 축하를 하고, 즉위식이 끝나면 국왕은 즉시 상복으로 갈아입고 선왕의 국장(國葬)을 집행했다. 그리고 국왕은 즉위 교서를 반포하고 사면령을 내렸다.

사위에 의한 즉위식은 국상 기간 중에 치르는 행사였기에 국왕은 부친이나 조부를 잃고 슬픔이 가득한 자식의 모습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문종은 조선시대에 처음으로 사위에 의한 즉위식을 거행한 국왕이다. 문종은 세종이 사망한 지 6일 만인 1450년 2월 23일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날 아침에 성복을 하고 종친(宗親), 백관과 함께 빈전에서 곡을 했다. 이후 문종은 면복 차림으로 세종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유명(遺命)을 받았고, 빈전 문밖의 장전(帳殿)에 나가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즉위식이 거행되는 동안 문종은 너무 슬피 울어 옷소매가 모두 젖을 정도였다. 즉위식이 끝나자 문종은 면복을 벗고 상복으로 갈아입었고 그 상태로 즉위 교서를 반포했다. 같은 날 문종은 사면령을 내렸고, 다음날 종묘, 사직 등에 즉위식을 알리는 고유제를 올렸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사망하고 5일 만에 왕위에 올랐다. 1776년 3월 5일 영조가 사망하자 예조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절차를 기록한 절목을 올렸는데, 정조는 차마 이를 볼 수가 없다고 돌려보냈다. 3월 10일에 정조는 최복을 입는 성복례(成服禮)를 거행한 다음 면복으로 갈아입고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이날 정조는 상복에서 면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주저했고, 국왕을 상징하는 대보를 받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조가 어좌에 오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신하들의 독촉이 거듭되자 정조가 불평을 했다.

이 자리는 선왕께서 임어(臨御)하시던 자리이다. 임어하실 때마다 내가 일찍이 어린 나이로 시좌(侍坐)하여 우러러보았는데 오늘 어찌 내가 이 자리를 맡을 줄 생각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데 내가 어찌 차마 갑자기 오를 수 있겠는가? 경들은 억지로 핍박하지 말고 잠시 내 마음이 조금 안정되기를 기다려라.34)

국왕이 겨우 어좌에 앉자마자 축하를 올리는 의식이 진행되었는데, 정조의 즉위식장은 국왕과 신하가 함께 우는 자리가 되었다. 국장 중에 치러지는 즉위식은 아무래도 기쁨보다는 슬픔이 큰 자리였다.

[필자] 김문식
34)『정조실록』 권1, 정조 즉위년 3월 신사(10일) ; 『일성록(日省錄)』 정조 즉위년 3월 신사(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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