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도설
조선 성리학의 심성론적 형이상학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철학 체계를 도상(圖象)으로 표현하고 도설(圖說)을 붙여 해설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정도전의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와 권근의 『입학도설』에서부터 시작된 중요한 전통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대개 도(圖)와 도설을 지어 자신의 철학 체계를 표현하였다. 도설류의 저작은 북송의 주돈이(周敦頣)가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술한 이후 성리학에서 중요시되던 학문 저술 방법이었지만,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서 더욱 특징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권근의 『입학도설』 중 천인심성합일지도는 후일 정지운의 천명도에 기초가 되었다. 이것이 이황의 천명신도(天命新圖)로 발전하 여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정지운과 거의 동시대에 김인후(金麟厚, 1510∼1560)도 비슷한 천명도(天命圖)를 남겼고, 이중호(李仲虎, 1512∼1554)는 심성정도(心性情圖)를 지었다. 이들의 도설도 권근의 도설에 근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은 이항(李恒, 1499∼1576)과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 대한 논변을 벌인 끝에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를 남겼다. 또 서경덕의 제자였던 이구(李球, ?∼1573)는 주기설(主氣說)을 표현한 두 종류의 도와 도설을 저술하였다.
이황은 ‘성학십도(聖學十圖)’와 도설을 지어 자신의 철학 체계를 완성하였고, 이이는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 사단칠정인심도심설도(四端七情人心道心說圖) 등을 그렸으며, 조식도 많은 도설을 남겼다. 이후 영남학파나 기호학파를 막론하고 성리학자로 자처하는 이 가운데 도설을 저술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조선 성리학의 중심 과제는 심성론에 관련된 이기설에 있었고, 그 요체는 도와 도설로 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