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5. 쌀과 농경의례

쌀과 장례

『삼국지』에 따르면, 동옥저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장사를 지낼 때 “질솥(와력(瓦鑠))에 쌀을 담아서 곽(槨)의 문 곁에 엮어 매단다.”고57) 하였다. 질그릇으로 만든 솥에다 쌀을 담아 죽은 이의 곁에 묶어 두었다는 것은 아마도 저승길을 갈 때 식량으로 삼으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경주 식리총 출토 동합>   
경북 경주 노동동에 있는 신라 고분인 식리총(飾履塚)에서 출토된 동합(銅盒)이다. 청동 합에 벼 이삭이 담겨 있다. 무덤에 벼 이삭이 함께 묻힐 정도로 당시 신라 사회에서 벼 또는 벼농사가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 식리총 출토 동합>   

경주의 미추왕릉 지구 제9 구역 A1·2·3호 묘곽, 제4 구역 A지구 3호분, 제7 지구 2호·3호분, C지구 4호분, 황남 대총, 식리총, 대구 달서 51호분, 해안면 고분, 성주 성산동 고분 등 신라의 무덤에서 토기에 담기거나, 은행나무 잎과 철도끼 등의 껴묻거리에 붙어 있는 벼알 또는 벼이삭이 검출되었다. 이들 출토 자료는 모두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의 고분에서 쌀이 아닌 벼의 형태로 출토되었는데, 적어도 신라에서는 장례에 벼를 일반적으로 부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옥저에서 쌀을 함께 넣어 두는 것과 달리 신라에서 벼를 함께 넣은 것이 내세에서 농사를 지을 종자라는 의미를 가진 것인지, 죽은 이의 환생과 관련된 곡령(穀靈)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동옥저 사회나 신라 사회 모두 쌀과 벼 또는 벼농사가 내세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박찬흥
57)『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30, 동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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