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6. 쌀 소비 문화

다양한 쌀 가공 음식

쌀은 또한 술을 빚거나 떡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식품으로 가공되었다. 쌀 가공 식품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쌀 생산이 늘고 또 소비가 증가한 현상을 반영한다.

서긍은 고려의 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고려에서는 찹쌀이 귀하여 멥쌀에 누룩을 섞어 술을 빚는데, 빛깔이 짙고 맛이 진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왕이 마시는 것을 양온(良醞)이라고 하는데, 좌고(左庫)에 보관하는 맑은 법주(法酒)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질그릇 술독에 담아서 누런 비단으로 봉해 둔다.171)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교역 활동을 통해 판매하는 품목이 있었다. 사찰은 농사를 통해 거둔 곡물 가운데 소비되고 남는 것을 판매하거나 가공하여 팔기도 하였다. 그중 쌀로 술을 빚어 판매함으로써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사찰에서 양조업(釀造業)이 성행하면서 사찰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는 예가 많았으므로, 1010년(현종 1)과 1021년(현종 12)에 승려들의 술 빚기와 사찰의 술 판매를 법령으로 금지하기도 하였다.172) 그러나 금지 법령에도 불구하고 사찰의 양조업은 성행하여, 1027년(현종 18) 경기도 양주의 장의사(庄義寺), 삼천사(三川寺), 청연사(靑淵寺) 등의 승려들이 금령을 어기고 양조한 쌀이 360여 석에 이를 정도였다.173)

<이색 초상>   
17세기에 그린 이색의 초상화이다. 이색은 정월 보름에 약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려시대에는 약식뿐 아니라 설기떡, 다식 등 쌀을 이용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약식, 설기떡, 다식 등 쌀 혹은 쌀가루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음식도 만들었다. 고려시대 떡과 관련한 풍습과 조리법을 『목은시고(牧隱詩藁)』·『해동역사(海東繹史)』·『지봉유설(芝峰類說)』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시고』에 따르면, 정월 보름 때 찹쌀에 기름과 꿀을 섞고 다시 잣·밤·대추 등을 섞은 후 다시 쪄서 약식을 만들고, 이것을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하였다.174) 약식을 만드는 조리법은 대체로 오늘날과 같았다. 유두일에는 눈같이 희고 깨끗한 단자병(團子餠)을 만들었다. 상사 때에는 어린 쑥을 멥쌀가루에 섞어 찐 쑥설기를 으뜸가는 음식으로 여겼다. 또 고려율고(高麗栗糕)라는 떡이 있었는데, 그늘에서 말린 밤가루와 멥쌀가루를 2 대 1의 비율로 섞고 꿀물이나 백탕으로 물을 내려 찐 떡이었다.

[필자] 이정호
171)서긍, 『고려도경』 권32 기명(器皿)3, 와준(瓦尊).
172)『고려사절요』 권3, 현종 원년 8월 ; 현종 12년 6월·7월.
173)『고려사절요』 권3, 현종 18년 6월.
174)이색(李穡), 『목은시고(牧隱詩藁)』 권13, 「점반(粘飯)」 ; 권14, 「이월일일이랑가궤점밤(二月一日二郞家饋粘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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