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5장 개항기 외국 여행가들이 본 조선, 조선인

1. 조선인에 대한 인상

[필자] 홍준화

개항을 계기로 지리적 인식 부족이나 접근 불가능 등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면서 조선을 방문하는 여행가들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특히 189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관문(關門)이자 요충지(要衝地)인 조선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현상이 외국인의 관심을 끌면서 조선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갈증을 느낀 여행가에게 더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행가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찾아왔고, 직업 또한 지리학자, 민속학자, 천문학자, 화가, 외교관, 기자, 교사, 전문 여행가 등으로 다양하였다. 이들은 지리적 환경이나 조선인의 성격, 풍속, 관습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문을 여행기(旅行記)로 출간하였다.304) 이들이 쓴 여행기는 당시 조선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타인의 시각을 통해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그런데 여행가들은 단순히 여행지에서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맥락이 여기에 반드시 관여하기 마련이다.305) 따라서 여행기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이를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가령 조선인을 ‘게으르다’, ‘불 결하다’ 등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을 경우, 그 밑바탕에는 서구인의 아시아에 대한 우월 의식이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조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 관한 관념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수세기 전부터 유럽의 학자, 소설가, 여행가 등 저술가들은 자신들과 구분되는 타자로서의 ‘동양’을 만들어 내고 조작하여 왔다. 이는 ‘동양’을 지배하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이를 위한 뚜렷한 양상은 진보하는 서양에 대비하여 ‘동양’을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表象)하는 것이었다. “정체되어 있고 변화하지 않는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다양성이 없다.” 등은 정체된 동양 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적 관용구였다. 동양에 대한 이러한 서양의 사고 또는 지배 방식을 소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한다.306)

<장승 곁에서>   
1906년에 헤르만 산더(Hermann Sander)가 함경북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길에 촬영한 사진이다. 독일인 산더는 1906∼1907년 우리나라를 여행하였다. 개항 이후 조선을 방문하는 여행가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은 견문한 내용을 여행기로 출간하였다.

이러한 동양에 대한 서양의 관념은 ‘끊임없는 반복과 당대 최고의 권위에 의존’하면서 발전하고 지속되었다. 즉, 19세기 초에 동양의 후진성, 퇴행성, 서양과의 불평등이라는 표상이 다원주의의 아류(亞流)인 ‘인종주 의’와 결합하면서 선진적 인종과 후진적 인종, 곧 유럽-아리아인과 동양-아프리카 인종으로 구분되었고, 이러한 구분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이 강조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집중적으로 선전된 선진적-후진적이라는 이원주의 사고방식이 인종, 문화, 사회에 적용되어 소위 ‘비문명적’인 지역을 선진적인 여러 권력이 병합 또는 점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시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307) 조선을 방문하였던 외국 여행가들도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 자신 또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재생산하였다.

<비숍의 여행기>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 견문기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다. 비숍은 영국 왕립 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조선을 방문한 것은 1894년부터 1897년 사이에 걸쳐서 네 차례였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은 출판한 해에 5판을 찍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이후 조선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비숍의 여행>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한강을 여행할 때 타고 다녔던 배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장에서는 개항기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 여행가들이 조선 및 조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그들이 남긴 여행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여행기에 나타난 조선 및 조선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그들이 흥미롭게 관찰하였던 풍물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에 대한 고찰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고유성 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식민주의 담론(談論)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텍스트로서의 여행기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여행기의 왜곡된 서술이 조선에 대한 부 정적 인식을 형성, 재생산하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였음을 살펴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필자] 홍준화
304)조지 커즌, 라종일 옮김, 『100년 전의 여행, 100년 후의 교훈』, 비봉 출판사, 1996, 43∼44쪽 ; 박양신, 「19세기 말 일본인의 조선 여행기에 나타난 조선상」, 『역사학보』 177, 역사학회, 2003, 111쪽. 일본의 경우, 조선 여행기 출판이 청일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다(프레데릭 불레스텍스, 김정연 옮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청년사, 2001, 145쪽).
305)박양신, 앞의 글, 107쪽.
306)에드워드 사이드, 박흥규 옮김, 『오리엔탈리즘』, 교보 문고, 1991, 48, 528쪽 ; 박지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조지 커즌의 동아시아 여행기-」, 『안과 밖』 10, 영미 문학 연구회, 2001, 299∼301쪽.
307)에드워드 사이드, 앞의 책, 74,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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