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01. 왕의 춤

[필자] 조경아

[01. 왕의 춤]86)

『예기(禮記)』악기에 “기쁘기 때문에 말하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감탄하며, 감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춤을 춘다.”라고 하였다.87) 말과 노래로는 다할 수 없는 기쁨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춤이다. 즐거움이 가장 극대화되었을 때 춤은 절로 나온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흥이 나면 절로 춤을 추었을까.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러 음주가무에 능하다고 한다. 음주가무에 능하였던 전통은 성리학이 지배하였던 조선에도 해당되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 사람들을 편의상 왕·선비·백성·기녀와 무동으로 나누어 이들이 추었던 춤을 살펴보기로 한다. 왕·선비·백성은 춤과 노래에 비전문인이며, 기녀와 무동만이 전문인이다.

제라르 코르비유 감독의 영화 <왕의 춤(King of Dancing)>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태양왕(Roi Soleil)이 되어 춤을 춘다. 프랑스의 궁정발레는 루이 14세 치하에서 절정에 달하였는데, 그는 종종 태양 왕으로 출현하여 프랑스의 탁월성과 영광을 구현한 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명예, 우아, 사랑, 용맹, 승리, 친절, 명성, 그리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하러 몰려드는 마지막의 그랜드 발레를 선도하였다.88) 왕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정치적 해석이 프랑스의 궁정발레에 담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명으로 왕이 되어, 하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린다고 생각한 조선시대에 왕 또한 춤을 추었을까. 음주가무를 즐기는 우리의 특징은 과연 조선의 왕에게도 해당될까. 왕에 관한 기록의 보고인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해 보니, 성리학적 질서가 엄격하였던 조선시대에도 왕이 춤을 추고, 춤추기를 명하는 내용이 담긴 기록이 적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와 달리, 조선시대의 왕은 본격적인 공연자로 출연하여 춤추지 않았고 비교적 공식성이 덜한 친교의 술자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 전기에는 술자리에서 왕이 춤추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중종 이후로는 왕이 춤을 추는 기록을 살펴볼 수 없다.

[필자] 조경아
86) 이 부분은 필자의 논문인 「조선, 춤추는 시대에서 춤추지 않는 시대로: 왕의 춤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40, 2008, pp.551∼587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음을 밝혀 둔다.
87) 『예기』 「악기」, “悅之故言之 言之不足 故長言之 長言之不足 故嗟歎之 嗟歎之不足 故不知手之舞之 足之蹈之也.”
88) 수잔 오 지음, 김채현 옮김, 『서양 춤예술의 역사』, 이론과 실천, 1990,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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