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4 전환기의 삶과 음악

05. 식민지 근대의 아이러니

20세기 전후로 우리나라는 신분제의 붕괴 및 서구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식민 통치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음악 역시, 이에 따른 급속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전통음악의 근대적 대응과 서양 음악의 유입 및 정착, 대중음악의 발달 등으로 요약되는 음악 양상들은 전화기적 삶과 음악의 모습을 드러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1920∼30년대 들어서서 한국인의 음악적 일상에 가장 깊숙이 영향을 미친 것은 식민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음반산업의 성장과 이에 따른 대중 음악 문화의 전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음반산업이 조선에 이식되면서 이 땅에는 전통음악의 일부가 취사 선택되어 대중음악 시장 속에 편입되었고, 새로운 대중가요로서 유행가와 신민요가 양대 주류 장르로 입지를 굳혔다. 이렇듯 1920∼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인의 음악적 일상은 유성기 음반 소비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음악적으로 왜색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유행가(트로트)는 당시 총독부로부터 금지당하면서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현실을 담 아내었던 곡을 여럿 배출하였기에 당대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장르로 긍정되는 이중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음악적으로 민요의 후예로 자생적 대중가요의 ‘적통’(?)을 잇고 있다고 평가되는 신민요는 당시 식민지 현실을 왜곡하는 향락성과 관제적 성격의 거짓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로트가 왜색의 뿌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가사의 내용이나 수용 맥락 역시 철저하게 친일적이고, 반대로 신민요가 민요에 양식적 뿌리를 대고 있는 만큼 가사의 내용이나 수용맥락에 있어 철저하게 민족적인 저항을 담아내었더라면, 명쾌하게 신민요는 민족주의적인 노래로, 유행가는 왜색 가요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식민지시대의 회색지대’를 저항이냐 순종이냐, 반일이냐 친일이냐, 이식이냐 자생이냐 등의 이분법적 잣대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속에서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노래가 불려진 맥락 및 내용과 음악양식적 실제 사이의 엇갈린 짝짓기가 그 자체로서 식민지 근대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에 대한 개인적 취향과 신화화 된 이념을 넘어서는 역사 인식 및 평가는 바로 식민지 근대의 토대 위에 세워진 대중가요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직시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필자]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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