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호는 다산·여유당이며 시·서·화에 뛰어난 안목과 필재를 가졌다. 이는 그의 가학(家學)과 윤두서의 외증손이라는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화에 상당한 수준의 안목을 갖추고 있으며 많은 제화시(題畵詩)와 제발을 남기고 있다.
그는 초기에는 이광사·강세황을 배웠다가 강진 유배 이후 특유의 서풍을 이루게 된다.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은 강진 유배 시기에 쓴 것으로 단아
하면서 다양한 필치를 보이고 있다. 널리 알려진 <하피첩(霞帔帖)>은 해서·행서·초서·전서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다산 초당>
강진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저술 활동을 하던 곳이다. [전라남도 강진]
[필자]
이성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