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설 -한국사의 전개-
Ⅰ. 한국사의 전개를 보는 시각
한국사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王朝의 흥망을 기준으로 보는 견해가 행해져 왔다. 한 왕조가 망하고 다른 한 왕조가 일어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이 같은 소위 王朝史觀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동질성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고, 또 같은 왕조 안에서도 사회적인 변화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왕조를 기준으로 역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 만족할 수가 없는 까닭이 이러한 데에 있는 것이다.
왕조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기된 새로운 방법이 한국사의 전개과정을 古代·中世·近代의 세 시기로 나누어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예들을 살펴보면, 비록 용어는 달라졌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왕조 중심의 관점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와 근대 사이에 近世라는 시대를 설정하여 高麗王朝와 구별하며 朝鮮王朝를 나타내기도 했던 것이다. 고대·중세·근대로 3구분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시대적 성격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시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는 위의 3구분법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결점을 극복한 것이 唯物史觀에 의한 한국사 전개의 이해이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고대는 奴隷制社會이고, 중세는 封建社會이고, 근대는 資本主義社會인 것이다. 이 같이 그 시대의 사회적 성격을 뚜렷이 규정함으로써, 위의 3구분법은 학문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한국사의 전개가 세계사의 그것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므로 해서, 한국사를 세계사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민족적 욕구를 만족시켜준다는 의미도 지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는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 유물사관은 위의 발전 법칙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다른 어떠한 시대구분도 이를 용납하지 않는 배타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의 전개과정을 보는 관점은 실제로 여럿이 가능한 것이며, 결코 어느 하나에 한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둘째로는 한국사 전개의 실제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노예가 생산활동의 주된 노동력이던 시대는 한국사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해서 유물사관의 신봉자들 중에서도 노예제사회의 존재를 부인하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또 한국사에서는, 封建이란 용어가 아니라 실질적인 封建領主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봉건사회의 존재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같이 유물사관에 의한 한국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는 실제와 어긋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관점을 그대로 한국사에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그 같은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시아적 특수성이란 이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유물사관이 시도한 본래의 의도에 배반된다는 점이다. 즉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사는 非正常的으로 전개해 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고, 이것은 결국 한국사를 세계사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누리게 하려던 취지에 배치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한국사의 전개 과정은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시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가 新民族主義史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적어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한, 새로운 시도들은 그만큼 한국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신선한 기운을 조성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는 한국사의 발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간집단의 변화에 기준을 두고 그 전개과정을 허락된 범위 안에서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