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해양
東海는 여러 면에서 西海나 南海와 상당히 다르다. 동해는 일본열도와 사할린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로서 대륙붕이 좁고 평균수심이 약 1,700m에 이르며, 태평양으로부터 거의 격리되어 있어 조차가 아주 작게 나타난다. 반면에 서해와 남해는 태평양 연변의 바다로서 전체가 대륙붕으로 이루어졌다. 평균수심이 서해는 50m 미만이고 남해도 약 100m에 불과하다. 서해의 국제적인 명칭은 黃海(Yellow Sea)이고, 남해는 東中國海(East China Sea)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해는 最後氷期에 전체가 육지였으며, 제주도는 이때 한반도와 이어져 있었다. 최후빙기에는 해면이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고, 이처럼 낮아졌던 해면이 대략 현재의 높이로 상승한 것은 약 4,000년 전의 일이었다.
한반도의 沿海는 과거에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했고, 교통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새우젓·조개젓·건멸치·건명태·자반고등어 등의 전통적 수산가공품은 전국에 널리 유통되었다. 오늘날에는 어업의 기술이 발달하고 남획이 극심해서 육지에서 가까운 연해의 어장이 황폐화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수산업에서는 近海가 중요하며, 이를 포함한 우리 나라 주변의 바다는 지금도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동해에서는 한류인 북한해류와 난류인 동한해류가 교류한다. 따라서 명태와 같은 한류성 어족과 오징어·꽁치·멸치·고등어와 같은 난류성 어족이 회유하여 해에 따라 풍흉이 심할지라도 큰 어장이 형성된다. 남해는 쿠로오해류(黑潮)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수온이 높게 유지되며, 멸치·정어리·갈치·고등어·전갱이·돔·가자미·붕장어 등 어종이 풍부하고, 어로활동이 연중 계속된다. 남해는 더구나 1960년대부터 김·미역·굴의 양식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국민소득의 증대로 활어의 수요가 늘어나 각종 어류의 가두리양식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어류의 가두리양식은 섬이 많고 수면이 잔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최근에는 여름철에 발생하는 赤潮로 시달린다.
서해는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 큰 하천들이 유입하여 영양염류가 풍부하다. 서해의 대표적인 어종은 산란을 위해 회유해 오던 참조기였다. 참조기는 남획으로 귀해져서 값비싼 물고기가 되었고, 오늘날 서해에서는 뱅어·갈치·꽃게·젓새우 등이 주로 잡힌다. 서해안의 어민들에게는 갯벌도 중요한 어장이다. 갯벌에서는 바지락·굴·동죽과 같은 조개류가 생산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많은 갯벌이 사라졌다. 조차가 큰 서해안에서는 조류의 흐름이 빠르고 물고기의 활동이 왕성한 大潮時에 어로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어선들은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는 밀물에 맞추어 새벽에 포구나 어항에서 바다로 나갔다가 오후에 돌아올 때가 많다. 바다로 나가지 않은 어선은 포구의 갯벌에 얹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서해안의 조차는 세계적이다. 인천에서는 大潮差가 8.1m에 이른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정도는 어로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어민들은 이를 음력날짜에 맞추어 정확하게 예측해 왔다. 어민들은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가장 많이 나가는 보름과 그믐 무렵의 조석, 즉 大潮를 ‘사리’, 물이 가장 적게 들어오고 가장 적게 나가는 그 사이의 조석, 즉 小潮를 ‘조금’이라고 부른다. 사리이건 조금이건 조차는 일년을 통해 계속 변동하는데, 여름에는 증가하고 겨울에는 감소한다. 사리 중에서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음력 7월 15일경의 사리를 ‘백중사리’라고 한다. 백중사리 때는 바닷물이 어항의 가로와 가옥으로 흘러넘치기도 하고, 흙으로 낮게 쌓은 방조제를 휩쓸면서 논으로 밀어닥치기도 한다. 백중사리와 태풍이 겹칠 때는 바닷물이 특히 많이 들어와 그 피해가 극심해진다.
밀물과 썰물 때 흐르는 조류는 좁은 海峽에서 빨라진다. 조선시대에 稅穀을 운반하던 漕運船들은 이러한 곳에서 빈번하게 조난을 당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왜적을 크게 무찌른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鳴梁海峽]에서는 사리 때의 유속이 최고 13노트에 이른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수로인 鹽河도 조류가 대단히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염하는 서해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거쳐야 하는 수로였기 때문에 그 연변의 곳곳에는 墩臺가 설치되었다. 강화도의 주요 관광지인 초지진·덕진진·광성보는 병인양요·신미양요·운양호사건 때 격전을 치른 돈대들이다. 초지진에는 격전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