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구석기의 형태와 기능
유물을 분류하는 것은 연구의 편의를 위하여 유물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구분하여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구석기는 형태나 기능이나 뚜렷하지 않은 점이 많아서 분류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주먹도끼·찍개·다각면원구·긁개·박편·석핵 등의 명칭으로 구석기를 분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석기의 형태나 추측되는 기능을 근거로 붙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혼란스럽고 애매한 분류이지만, 구석기시대 인류가 남긴 흔적의 대부분은 석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석기고고학자는 이 석기의 분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몇몇의 구석기고고학자들이 시도한 분류방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각 지역의 석기공작양상을 토대로 분류한 것들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F. Bordes의 분류법이나 Courant의 분류법 등이 널리 사용되며 아프리카에서는 M. Leakey의 분류나 Clark and Kleindinst의 분류가 사용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분류법들이 소개되어 통용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독자적인 용어나 한글로 된 용어체계도 사용하고 있다.006)
그런데 구석기는 형태에 의한 분류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러한 형태적인 명칭들이 이미 기능적인 면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아 석기공작연구에 애로가 되고 있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찍개」라고 부르는 도구는 어쩌면 찍는 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수가 있는 것이며 또한 「긁개」도 마찬가지이다. 연구자가 「긁개」였을 것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것이 실제로 긁개로 사용되었던 것인지는 많은 경우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늘날 고고학자가 사냥에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판단한 석기는 전혀 사용되지 아니한 것일 수도 있으며 사냥이 아니라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석장리구석기의 연구에서 드러난 이러한 문제점은 아직도 여러 논문에서 반복되고 있다.007) 석기는 시대가 올라가면 갈수록 형태가 정형화되는 경우가 드물며 비교적 형태가 정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능이 한 가지에 국한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내려오는 경우에도 형태적인 정형성은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능의 추정에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시각에서 보는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실제적인 용도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구석기공작에 대한 기능적 연구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석기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고고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008) 입자가 곱고 밀도가 지극히 고른 석재, 플린트·쳐트 또는 흑요석 등으로 만든 석기들에 남은 흔적을 용도별로 구분하는 방법을 실험을 통하여 만든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 내는 방법이다. 이것은 석기의 기능적인 판단을 위하여 획기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석재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있고 모든 행위가 석기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며 아직 완벽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석기사용흔의 분석 이외에도 식물미세석립분석이나 아미노산분석을 통하여 일부 유물의 용도를 확인할 방법도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은 기능적인 연구는 한계가 있다.
석기문화의 이해에 가장 심각한 난관이 되는 것은 석기는 다른 고고학적 유물과는 달리 원석에서 시작되어 부스러기돌이 되는 전과정을 거치는 동안 점차로 줄어들면서 각 단계에서 용도가 달라지고 여러 가지의 용도가 한 석기에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유적에서 드러난 석기들의 용도가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그 지점에서 발생한 행위를 모두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분류법들은 대부분 형태나 제작과정상의 단계를 위주로 체계를 만들고 있다. 현재 한국구석기연구에 사용되는 분류와 용어의 체계는 각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다. 먼저 서구의 용어들을 한글화하여 사용하고 있는 경우009)로 이 분야의 선구적인 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지만 각 분류와 용어의 개념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흠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능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판단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서 오히려 혼란이 일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의 구석기용어들을 소개하여 적용하고 있는 경우010)로, 세부적인 용어들을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구체적이고 엄격한 분류기준이 있어서 분류의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구석기공작의 분류체계를 도입하여 전곡리구석기유물을 분석한 경우011)인 이 분류체계의 특징은 석기의 제작공정상의 단계를 1차적으로 구분하고 난 다음에 석기의 형태적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기분류의 시작은 형상적인 변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변형의 위치, 정도 그리고 기술적인 차이 등에 의해서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구석기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변형의 유무의 판단과 제2차적인 변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이것은 도구로 사용된 「석기」를 정의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유적에서 발견되는 많은 석기(광범위한 정의에서)들은 전혀 사용되지 아니한 폐기된 석재 내지는 부산물인 것이다. 제2차적인 가공이 뚜렷하여 석기의 사용목적이 드러나는 석기들은 큰 문제가 없으나 형태적으로 볼 때 사용했음직한 석기, 즉 예를 들어 한쪽이 예리한 커다란 박편을 어떻게 분류하여야 하는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흔히 이러한 석기들을 「사용된 석기」로 분류하고 있고 구체적인 기능을 지칭하는 명칭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에 사용된 것과 사용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며 분류의 기준은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사실 석기공작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석기가 기능적으로 중요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많은 석기들은 2차가공이 없이도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2차적인 가공이 없는 석기의 경우에 뚜렷한 사용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사용된 도구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것이 혼란을 피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전혀 2차가공이 없는 석기를 도구의 범주에 넣어서 분류하는 경우는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으며 도구로 판단하는 데는 분명한, 즉 혼돈되지 않는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칼」이라고 부르는 석기는 전혀 가공이 없는 박편이나 석편의 한 부분에 날카로운 직선부위가 있으면 칼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전혀 타당한 분류가 아니다. 칼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히 기능적 설명의 명칭인데 그러한 석기가 칼이라는 기능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의 제시가 없다면 고고학자의 주관적인 의지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구석기고고학의 방법론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006) | 손보기,<층위를 이루는 석장리 구석기문화>(≪歷史學報≫ 35·36, 1967), 1∼25쪽. ―――,<석장리의 자갈돌-찍개 문화층>(≪韓國史硏究≫ 1, 1968), 1∼62쪽. 鄭永和,<舊石器의 名稱 및 形態分類>Ⅰ(≪韓國考古≫ 3, 1976). ―――,<舊石器의 名稱 및 形態分類>Ⅱ(≪嶺南史學≫ 7·8, 1978), 105∼17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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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 손보기,≪한국구석기연구의 길잡이≫(연세대 출판부, 1988). ―――,≪석장리선사유적≫(동아출판사, 1993). |
008) | Keeley, L., Experimental Determination of Stone Tool Uses, Microwear Analysi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80. Keeley, L. & N. Toth, Microwear polishes on early stone tools from Koobi Fora, Kenya, Nature 293-5832, pp. 464∼465. |
009) | 손보기, 앞의 글(1967), 1∼25쪽·앞의 글(1968), 1∼62쪽. |
010) | 鄭永和, 앞의 글(1976·1978). |
011) | 배기동, The Siginificance of the Chongokni Paleolithic Stone Industry in the Paleolithic Tradition of East Asia, Ph. D. dissertation in the Department of Anthropology, University of California, 19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