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Ⅰ. 구석기문화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1) 구석기유적의 분포(1) 남한의 구석기유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화석인골의 몇 가지 특징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1) 생계경제
            • (2) 구석기시대의 주거지
            • (3) 구석기의 도구제작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비교와 문제점
          • 2) 일본
            • (1) 한반도와 일본의 자연환경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3) 시베리아
            • (1) 구석기유적의 발견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시대설정
            • (2) 연구사 개관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1) 인골의 인류학적 연구
            • (2) 인골의 해부학상 형태 비교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조개더미
            • (3) 무덤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예술품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교역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1)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영역구분과 지역성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1) 신석기문화의 이동
            • (2) 남해안계와 규슈지역의 신석기문화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1) 미송리 하층과 후와 하층
            • (2) 서포항 Ⅰ∼Ⅲ기층 당산유적과 소주산 중·하층, 오가촌기
            • (3) 쌍학리유적, 서포항 Ⅳ기층과 소주산 상층기
            • (4) 신암리 Ⅰ기층, 농포·호곡동 Ⅰ기층과 우가촌 하층기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남한의 구석기유적
가. 한데유적

가) 금강유역

(가) 공주 석장리유적(사적 제234호)

 충남 공주군 장기면 장암리 석장마을의 금강 북안에 위치한 이 유적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차례 발굴하였고, 이어서 1990년과 1992년에 또다시 발굴하여 지금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발굴을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구석기연구사에 있어 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유적은 크게 2개 지구로 나뉘는데, Ⅰ지구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터를 확인하였고(<사진 1>>), Ⅱ지구는 석장리를 맨 처음 발굴한 1964년부터 조사하여, 27개의 지층에서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의 12개 구석기문화층를 밝혀 냈다. 최근에는 제4기지질학의 연구결과를 받아서 제1문화층(27지층)을 제2간빙기(Mindel/Riss, 약 35만∼30만년 전)에 된 강바닥 쌓임층의 전기 구석기로 설정하고(<그림 1>), 4문화층까지 전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사진 1>석장리 제1지구 제1호 집터 모습

<그림 1>석장리 주먹대패

 그 다음에 오는 중기 구석기의 단계에는 제3간빙기(Riss/Würm, 약 12만∼7만년 전)의 강가 쌓임층에 된 5문화층(15지층)에서 아슐리안전통의 주먹도끼(<사진 2>·<그림 2>)가 출토되고 있어 주목된다. 제6문화층(15ㄱ지층)·7문화층(13지층)을 거쳐, 제4빙기(뷔름)의 비탈쌓임층에는 8·9·10문화층이 찾아졌다. 특히 9문화층은 석장리유적의 발굴계기를 만든 자갈돌찍개문화층이어서 학사적 위치를 갖고 있다. 10문화층의 연대가 50,270BP 이전으로 밝혀져 과학적 절대연대를 제시하게 되었다.

<사진 2>석장리 9문화층 주먹도끼

<그림 2>석장리 주먹도끼

 후기 구석기문화에는 11문화층(30,690BP)이 발달한 것을 확인하였고, 12문화층은 좀돌날몸돌(細石核)이 있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되어 동북아시아 좀돌날문화권의 전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불땐자리·기둥자리·문돌들이 발굴되어 약 60㎡ 크기의 집터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규모는 8∼10명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또한 화덕자리에서 나온 숯을 14C연대측정의 결과 20,830BP가 나와 당시의 문화해석에 큰 기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석장리유적의 발굴조사는 우리 구석기학연구에 개척적인 공헌을 하였다는 점 이외에도, 꽃가루분석·숯분석·토양분석·동위원소를 이용한 절대연대측정 등의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구석기연구를 당시의 기후와 자연환경의 복원 쪽으로 관심을 두게 한 점, 석기에 관계되는 낱말-특히 석기와 제작수법에 관한 용어-로 우리말을 찾아 사용함으로써 구석기를 비롯한 고고학의 한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112)

 현재 이 유적에 대한 기념관을 세울 정부의 계획이 추진중이어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

(나) 청원 샘골유적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샘골마을에 있는 이 유적은 대청댐수몰지구 문화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1978년에 발굴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다.113) 유물출토의 층위가 얕아서, 오래 살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배모양 석기는 공주 석장리·단양 수양개·승주 곡천·화순 대전·평양 만달 등에서 출토된 것들과 비교되고 있다.

나) 한강유역

(가) 단양 수양개유적(충북 기념물 제100호)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수양개유적은 충주댐수몰지역 문화유적발굴조사로 1983∼1985년까지, 그리고 다시 1995∼1996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7차에 걸쳐 발굴된 면적은 모두 1,250㎡로,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넓게 발굴된 구석기유적이다(<사진 3>).114)

 최근까지의 발굴로 중기 구석기문화층(Ⅴ층)-청동기문화층(Ⅱ층)이 층위로 있음이 밝혀졌다. 중기 구석기층에서는 넓게 발달된 자갈층 위에 모룻돌을 이용한 직접떼기로 만든 긁개·찌르개·주먹대패 등과 같은 다목적 석기가 출토되었다.

 수양개유적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발굴된 후기 구석기문화층(Ⅳ층)의 석기재료로는 90% 이상이 셰일 모난돌이 이용되었고, 직접떼기수법과 돌날수법, 눌러떼기수법과 같은 간접떼기수법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잔손질을 베풀어 만든 세련되고 훌륭한 석기 가운데는 다양한 형식의 주먹도끼(<사진 4>·<그림 3>)와 전형적인 찍개도 있다. 특히 많은 수의 슴베찌르개(<사진 5>·<그림 4>)는 일본 규슈지방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과, 또 일정한 범위 안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림 3>수양개 주먹도끼

<사진 4>단양 수양개 주먹도끼 만드는 사람 복원상

<사진 5>수양개 슴베찌르개

<그림 4>수양개 슴베찌르개

<사진 6>수양개 좀돌날몸돌

 가장 특징적인 유물인 좀돌날몸돌은 크게 3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사진 6>·<그림 5>), 연구결과로는 공주 석장리에서 영향을 받아 좀돌날몸돌의 제작기술을 발달시켜, 한 줄기는 남쪽의 전남 승주 곡천·화순 대전에서 일본 규슈로, 또 한 줄기는 북쪽의 평양 만달리를 거쳐 선봉 굴포리→우스티노브카→사할린→일본 홋카이도에로의 전파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115)

 이러한 연모 외에 많은 격지·돌망치·모룻돌 등이 그대로 50군데 이상의 석기제작소에서 발굴되어 제작행위의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사냥대상물에 관한 풍요기원이나 잘 잡히기를 바라는 기원과 주술예술의 표현으로 보이는 첫소의 정강이뼈에「물고기모양」을 새긴 예술품(8.2×3.5㎝)이 발굴되어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7차에 걸쳐 발굴된 면적 이외에도 유물이 20배 이상의 지역에 출토되는 수양개유적은 유물의 종류, 제작수법 및 유물의 양에서 국내 최대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구석기유적지로서 우리 나라 선사유적의 교육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 양구 상무룡리유적

 평화의 댐 건설에 따른 화천댐수몰지역내 문화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1987∼1988년까지 3차에 걸쳐 발굴되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에 자리잡고 있는 이 유적은 층위가 4개로 구분되는데, 문화층은 Ⅲ층(후기 구석기문화층)과 Ⅳ층(중기 구석기문화층)에 있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잘 만든 밀개·긁개 등의 연모와, 단양 수양개 Ⅱ형식과 비교되는 좀돌날몸돌이 출토되어 주목된다(<그림 5>). 중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주먹도끼·찍개(<그림 6>)·사냥돌 등 큰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석기제작용 석기들과 부스러기 등이 다량으로 흩어져 여러 곳에서 출토되어, 당시 사람들이 이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음을 알려준다.

<그림 5>상무룡리 좀돌날몸돌

<그림 6>상무룡리 찍개(좌)·찌르개(우)

 보고자는 이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에 대한 X선형광분석을 하여 백두산계로 밝히고 있으며, 아울러 흑요석의 유통경로를 진부령으로 보고 있다.116) 또한 이 유적은 남한지역에서는 가장 북단에 위치하며 북한 구석기와의 연결에도 좋은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다) 제천 창내유적

 충북 제천군 한수면 사기리에 위치한 이 유적은 충주댐수몰지구 조사의 일환으로 1982∼1983년에 발굴된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세운 집터(막집)이다.

 3∼4명 정도의 인원이 당김돌을 이용해 약 10㎡의 사냥용 막집을 세우고 출입문 바로 밖의 화덕에 불을 피우며 복숭아(씨)를 따먹은 것으로 해석되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복원연구에 좀더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117) 이 집터층에서는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Ⅱ층)의 둥근 밀개(<그림 7>)가 특징적이다. 이 집터는 공주 석장리와 화순 대전집터와의 비교연구가 기대된다.

<그림 7>창내 둥근 밀개

(라) 양평 병산리유적

 경기도 양평군 강산면 병산 4리에 위치한 이 유적은 남한강가에 발달된 구석기유적과 문화층을 1992∼1993년에 발굴하였다.

 발굴결과 5개의 지층을 확인하였고, 그 중 2층(1문화층), 3층(2문화층), 4층(3문화층)에서 뗀석기가 나왔다. 3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망치돌과 격지가, 2문화층은 중기·후기 구석기에 속하는 몸돌·망치·자르개·찌르개·찍개·둥근날 몸돌석기·여러면 석기·긁개 등이 나왔고, 1문화층은 새기개·망치돌·격지 등이 나왔다.118)

 한편 위의 세 지층을 산소동위원소분석과 관련하여 5번의 기후변동이 있던 13만년 전 이후의 퇴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2번의 언땅트기가 확인된 것은 전곡리·일산·금파리·석장리의 지층과도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연대에 대한 설정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밝혀지게 될 수 있다.

(마) 제천 명오리 큰길가유적

 충주댐건설로 조사된 충북 제원군 한수면 명오리에 있는 큰길가유적은1983∼1984년 2회에 걸쳐 발굴되었다.

<그림 8>명오리 큰길가 주먹도끼

 큰길가유적은 남아 있는 유구의 범위가 좁기는 하여도, 몸돌석기인 주먹도끼(<그림 8>)와 격지석기인 긁개·밀개·찌르개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이 유적을 전곡리와 중국의 丁村유적과 유사성을 비교하여 중기 구석기시대로 보고 있다.119)

다) 한탄강유역

(가) 연천 전곡리유적(사적 268호)

 전곡리유적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의 한탄강 언저리에 넓게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의 발굴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이루어졌고, 그 후 1986·1991년 2차에 걸쳐 추가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유적은 아주 방대하고 훌륭한 석기들이 출토되어, 우리 나라는 물론 아시아 구석기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120)

 이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아슐리안계 주먹도끼는 북부아프리카의 상고안(Sangoan)유물과 비교되고 있으며(<사진 7>·<그림 9>), 제작기법이 매우 독특하여「전곡리문화」로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보고자들은 유적의 퇴적원인, 당시의 기후, 문화층의 문화내용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각기 다르게 보고 있다.

<사진 7> 전곡리 주먹도끼

<그림 9>전곡리 주먹도끼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조사로 전곡리유적이 차지하는 문화사적 위치를 올바르게 세워야 할 것이다.

(나) 연천 남계리유적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 있는 이 유적은 1989·1992년에 2차에 걸쳐 조사되었다. 문화층은 전기와 후기 구석기문화층의 2개로 가름되는데, 특히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찍개·긁개를 비롯한 부리형 밀개가 출토되었다.121)

라) 섬진강유역

(가) 승주 곡천유적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곡천마을에 있는 이 유적은 주암댐수몰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1986∼1989년까지 발굴되었다. 2개의 문화층에서 아래(Ⅶ층)는 중기 구석기문화층으로 주먹도끼가, 위쪽의 문화층(Ⅴ층)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쐐기형 좀돌날몸돌(<그림 10>)과 스키모양 격지-밀개 등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제3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의 위층으로 미늘과 같은 잔석기가 나와 중석기로 보여지지만, 제2문화층보다 늦은 시기의 후기 구석기(약 15,000BP)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앞으로의 연구가 주목된다.

<그림 10>곡천 좀돌날몸돌

 호남지방에서 처음 발굴된 구석기유적이라는 점과, 이 지역의 문화적 성격이 좀돌날문화권에 있음을 알려주는 유적으로 일본 규슈지방과의 비교연구가 기대된다.122)

(나) 화순 대전유적

 주암댐수몰지역 조사로 밝혀진 대전 구석기유적은 전남 화순군 남면 사수리 대전마을의 구릉 일대에 위치한 한데유적이다. 3차에 걸친 발굴결과 중석기문화층(Ⅴb), 후기 구석기문화층(Ⅴa) 및 중기 구석기문화층(Ⅳa)이 찾아졌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석기의 제작행위를 알 수 있는 모룻돌·망치는 물론 격지가 함께 출토되었으며, 유물 가운데에는 배모양·쐐기모양 좀돌날몸돌들이 출토되고, 막집이 발굴되어 주목된다. 특히 막집은 기둥구멍 24개가 확인된 네모꼴로 평면이 30㎡이다. 이 집터는 좀돌날몸돌문화기에 있었던 집터로 현재 승주 고인돌공원으로 이전하여 복원되어 있다.

<그림 11>대전 좀돌날몸돌

 여기에서 출토된 후기 구석기의 말기(약 15,000BP)의 특징을 보이는 좀돌날몸돌은 북부지방의 만달리, 중부지방의 석장리·수양개 등과 남부지방의 곡천·옥과 등에서 출토된 바 있어 비교연구되고 있다(<그림 11>).123)

(다) 곡성 옥과유적

 이 유적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 주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0년 발굴되었다. 석기는 후기 구석기의 늦은 시기의 특징을 보이는 좀돌날몸돌과 스키모양 격지, 톱니날석기 등이 출토되어 좀돌날몸돌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4)

112)최근 석장리 발굴 3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을 정리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다(손보기,≪석장리 선사유적≫, 동아출판사, 1993).
113)이융조,<청원 샘골 구석기유적>(≪大淸댐水沒地區 遺蹟發掘報告書≫, 충북대 박물관, 1979).
114)이융조,<丹陽 수양개舊石器遺蹟 發掘調査報告>(≪忠州댐水沒地區 文化遺蹟延長發掘調査報告書≫, 충북대 박물관, 1985), 101∼252쪽.
115)이융조,<단양 수양개 배모양석기의 연구>(≪古文化≫35,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9), 3∼77쪽.

이융조·윤용현,<한국 좀돌날목돌의 연구-수양개수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先史文化≫ 2,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1994), 133∼229쪽.
116)최복규·황용훈 외,≪上舞龍里≫(강원대 박물관·강원도, 1989).
117)박희현,≪제원 창내 후기 구석기문화의 연구≫(연세대 박사학위논문, 1989).
118)한창균·윤내현,≪양평 병산리유적≫(단국대 중앙박물관·경기도, 1992).

―――,≪양평 병산리유적(2)≫(단국대 중앙박물관·경기도, 1994).
119)최무장,≪韓國의 舊石器文化≫(集文堂, 1994), 72∼81쪽.
120)金元龍·裵基同·鄭永和·崔茂藏·黃龍渾,≪全谷里-遺蹟發掘 調査報告書-≫(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3).

배기동,≪全谷里-1986年度 發掘調査報告書-≫(서울대 박물관, 1983).

배기동·최재호,<전곡리 5지구구석기유적 발굴조사(91년)보고>(≪보성강·한탄강유역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연구소, 1994).

배기동 등,≪전곡 구석기유적-1994∼’95년도 발굴조사보고서≫(연천군·한양대 문화인류학과, 1996).
121)최무장,≪漣川 楠溪里 舊石器遺蹟≫(문화재연구소, 1991).

―――,<남계리 구석기유적 제2차 발굴조사보고>(≪보성강·한탄강유역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연구소, 1994).
122)이융조·윤용현,<牛山里 曲川 先史遺蹟>(≪住岩댐水沒地域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Ⅶ)≫, 전남대 박물관·전라남도, 1990), 77∼139쪽.
123)이융조·윤용현,<화순 대전 후기 구석기문화>(≪先史와 古代≫3, 1992), 3∼38쪽.
124)이선복 등,≪옥과 구석기유적≫(서울대 박물관·곡성군, 1990).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