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Ⅰ. 구석기문화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1) 구석기유적의 분포(3) 집자리 복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화석인골의 몇 가지 특징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1) 생계경제
            • (2) 구석기시대의 주거지
            • (3) 구석기의 도구제작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비교와 문제점
          • 2) 일본
            • (1) 한반도와 일본의 자연환경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3) 시베리아
            • (1) 구석기유적의 발견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시대설정
            • (2) 연구사 개관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1) 인골의 인류학적 연구
            • (2) 인골의 해부학상 형태 비교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조개더미
            • (3) 무덤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예술품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교역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1)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영역구분과 지역성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1) 신석기문화의 이동
            • (2) 남해안계와 규슈지역의 신석기문화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1) 미송리 하층과 후와 하층
            • (2) 서포항 Ⅰ∼Ⅲ기층 당산유적과 소주산 중·하층, 오가촌기
            • (3) 쌍학리유적, 서포항 Ⅳ기층과 소주산 상층기
            • (4) 신암리 Ⅰ기층, 농포·호곡동 Ⅰ기층과 우가촌 하층기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의 한데집터와 복원

 동굴유적은 전기 구석기시대부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 이용했던 생활의 터전이다. 따라서 동굴유적의 막집터를 복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굴유적 안에서 막집터를 찾아 막집을 복원한 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147) 그 예는 매우 드물다. 이에 비하여 한데집터는 구석기시대의 집터 중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막집을 복원해 본 예가 많은 편이다.

 지금까지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구석기시대의 가장 오래된 한데막집터로서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있는 Olduvai계곡의 제1바닥층에서 약 180만년 전의 전기 구석기시대 한데집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148) 이외에도 또 다른 전기 구석기시대의 한데집터가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다. 그것에 비하면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한데집터는 비교적 많이 발견된 편이다.149) 그것은 대체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위와 같은 막집의 입지조건이나 기본구조를 갖춘 한데유적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이러한 조건과 구조에 근거해서 당시의 막집을 복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한데막집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된 유적으로는, 함북 웅기 굴포리 서포항유적, 충남 공주 석장리유적, 충북 제천 사기리 창내유적, 전남 화순 사수리 대전유적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굴포리 서포항유적만이 중기 구석기시대의 것일 뿐 나머지는 모두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들이다.

가) 웅기 굴포리 서포항유적

 굴포리유적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굴포문화 Ⅰ기층에 막집의 시설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150) 그 시설물이란 막의 가장자리를 눌러 놓았던 것으로 인정되는 분암덩이와 돌무지로서 서북-동남선상에 부정형 또는「ㄱ」자형으로 놓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막집터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기둥자리나 기둥의 흔적 또는 화덕자리와 같은 막집터의 증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 시설물이란 모루로 썼던 것으로 인정하는 큰 분암덩이가 같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한데 석기공방과 관련된 구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 공주 석장리유적

 금강가 바로 옆에 있는 공주 석장리유적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한데집터 두 곳(제1지구 제1호 집터 및 제3호 집터)을 발견하였다.

(가) 석장리 제1지구 제1호 집터

 제1지구 제1호 집터(51구덩이)151)는 바로 눈앞에 금강이 보이는 비스듬한 언덕 위에 기둥을 세워 막집을 지었던 한데집터이다. 제1호 집터에서는 기둥자리·화덕자리·문돌·담돌·당김돌 등의 구조를 찾았다. 그 외에 집터 안에서 새겨진 돌, 땅바닥에 새겨 놓은 고래상, 사람과 짐승의 털, 물감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기둥자리는 5개를 찾았으며 지름은 모두 약 10㎝ 정도이다. 기둥자리는 문돌로부터 250㎝ 지점에서 1개, 서북쪽 담돌과 180㎝ 떨어진 곳에서 1개를 찾았으며 나머지는 이들 2개의 기둥자리에서 100∼150㎝ 정도 떨어진 상태로 모두 수직에 가깝게 나타났다.

 화덕자리는 문돌에서 70∼80㎝ 안쪽에 한 곳을 마련하였으며 별다른 시설없이 땅이 움푹 파인 불규칙한 타원형(115×105㎝)의 모양이다. 이 곳에서 오리나무 종류의 나무숯과 재가 나왔다.

 집터의 서남방향에 양쪽 문돌이 약 150㎝ 사이를 뗀 상태에서 나왔다.

 막집터의 바깥 둘레에는 서쪽에서 남쪽, 동쪽으로 연이어 큰 돌로 담돌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고(7.5×7m 범위), 막집을 고정시키기 위한 당김돌은 집터의 남쪽과 동쪽에서 찾았다.

 화덕자리에서 출토된 나무숯을 이용하여 절대연대를 측정한 결과 20,830±1,880BP(AERIK-8)라는 연대가 나와 석장리 제1지구 제1호 막집터가 후기 구석기시대의 것임이 밝혀졌다.

 석장리 제1호 막집은 복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지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① 먼저 가운데에 큰 기둥을 5개 이상 수직으로 세우고 잔가지를 큰 기둥과 담돌에 받쳐 막을 두른 뒤 지붕을 이었다. ② 출입문은 막집의 남쪽인 강쪽에 문돌을 놓아 만들었다. ③ 문돌이 가까운 막집의 안쪽에는 땅만 움푹 판 채로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은 화덕을 하나 마련하였다. ④ 막집 둘레에는 담돌을 둘러 놓았다(<그림 1>).

<그림 1>석장리 제1지구 제1호 막집 복원그림
손보기,≪구석기유적-한국·만주-≫(한국선사문화연구소, 1990).

 북서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지세에 세웠던 제1호 막집을 복원해 본 결과, 바닥은 네모꼴 모양이 아닌 여러 모로 된 둥그스럼한 모양이 된다. 막집의 내부 면적은 약 50㎡의 크기로 8∼10명 정도가 생활했던 곳으로 짐작된다. 또 화덕을 집안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아 이 막집은 겨울철에 생활했던 집으로 여겨진다.

(나) 석장리 제1지구 제3호 집터

 제1지구 제3호 한데집터(101구덩이)152)는 제1호 집터보다 위층에서 찾았으며 그 구조는 제1호 집터와 약간 다르다. 제3호 집터에서는 기둥자리·화덕자리·당김돌을 찾았고, 그 외에 집터의 앞쪽에서 석기공방을 확인하였다.

 크고 작은 기둥자리가 여러 개 나왔으며 큰 것은 지름이 16cm, 작은 것은 지름이 4∼8cm 정도 된다. 기둥자리는 한 줄 또는 두 줄로 이어져 나왔고 작은 구멍은 10°쯤 기울었다.

 화덕자리는 집터 앞쪽에 있으며 7개의 자갈돌이 불에 탄 상태로 둥글게 놓였다. 당김돌은 큰 기둥자리 바깥쪽에 있는 자갈돌을 이용하였다.

 제3호 집터는 제1호 집터보다 층위와 석기구성으로 보아 제1호 집터보다 조금 늦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막집터이다.

 석장리 제3호 막집은 다음과 같이 복원된다. ① 먼저 동쪽에 큰 기둥을 서로 마주하여 세운 후 ② 서쪽으로 가면서 기둥을 안으로 차츰 좁히면서 약간 기울여 남·북쪽에 줄지어 세우고 양쪽에서 잔가지로 서로 엮어 종도리를 이루었다. ③ 출입문은 큰 기둥을 세운 동쪽에 마련하였다. ④ 큰 기둥 바깥에 있는 자갈돌에 당김줄을 매어 큰 기둥을 고정하도록 하였다. ⑤ 막집 앞에는 둥근 자갈돌 7개를 둘러 놓아 한 개의 화덕을 만들었다(<그림 2>).

<그림 2>석장리 제1지구 제3호 막집 복원그림
손보기,≪석장리 선사유적≫(동아출판사, 1993).

 완성된 막집의 바닥은 고른 편이고, 지붕의 모양은 앞에서 뒤로 가면서 기울어지고 좁아진 동서로 긴 형태이다. 집의 뒤쪽은 막집의 바닥보다 낮게 하여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였다. 막집의 크기는 16.5㎡로서 한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규모이다. 화덕자리가 막집의 앞에 놓인 점, 집 앞쪽이 높은 점, 배수시설이 잘된 점 등으로 보아 석장리 제3호 집터는 여름철에 지었던 강가의 막집터로 생각된다.

다) 제천 창내유적

 창내유적153)은 남한강과 그 지류인 창내가 마주치는 두물머리에 있으며 이 곳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한데막집터를 찾았다. 강자갈층 위에 마련된 창내 막집터에서 기둥자리·화덕자리·당김돌 등 집터의 기본구조를 찾았다.

 기둥자리는 10여 개 이상 찾았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는 대개 60∼160㎝ 간격이다. 기둥구멍은 지름과 깊이, 기울기가 각기 다르게 마련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각 기둥구멍의 지름은 10∼28㎝이고 깊이는 11∼49㎝이다. 출입문 부분인 동쪽의 기둥구멍은 깊이가 모두 40㎝ 이상으로 매우 깊은 편이다. 기둥구멍의 기울기는 22˚∼81˚로 기운 정도가 매우 다르지만 나들이 부분은 모두 80˚이며, 버팀목을 세운 기둥자리는 모두 71˚∼76˚에 이른다. 그리고 기둥구멍 주위에는 자갈돌을 동그랗게 돌려 놓았다.

 화덕자리는 막집의 바로 앞에 있으며 방향은 동쪽인 강쪽에 놓였다. 구조는 커다란 돌(59×20×19㎝)을 집과 나란히 옆으로 놓고서 이맛돌로 삼아 이 돌과 잇대어 둥근 모양이 되도록 강자갈돌을 두 켜 내지 세 켜 정도 쌓아 올려 놓았다. 화덕의 크기는 56×76cm이고 깊이는 가장 깊은 부분이 47㎝이다. 둥그런 화덕 안에서 참나무과의 커다란 나무숯과 숯부스러기가 나왔다.

 당김돌은 막집의 뒤편에 있는 커다란 자갈돌을 이용하였다.

 창내유적의 막집터는 이 곳에서 출토된 석기의 특징으로 보아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터임이 밝혀졌다.

 창내유적의 막집은 다음과 같이 복원된다. ① 우선 3개의 가위목을 지붕끝에서 서로 겹쳐서 길게 기울여 세우고 가위목을 아랫부분에서 각각 버팀목으로 받친 후 ② 하나의 문기둥을 가위목 위에 걸쳐서 거의 수직으로 깊게 세워 막집의 중심 기둥으로 삼았다. ③ 나머지 기둥을 지붕끝에 얹어 기울여 세우고 잔가지로 엮어 집의 기본 골격을 갖춘 후에 지붕을 단단히 하고 풀로 지붕을 이어 막집을 만들었다. ④ 출입문은 다른 어느 기둥보다 곧추 세운 동쪽 즉 강쪽 부분에 마련하였다. ⑤ 집을 짓고 나서 보다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지붕끝에서 내린 줄을 당김돌에 연결시켜 마무리지었다. ⑥ 출입문 바로 바깥에 크고 작은 자갈돌을 이용하여 타원형의 화덕을 만들었다. 특히 바람에 불씨가 막집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커다란 이맛돌을 막집 쪽에 길게 가로놓았다(<그림 3>).

<그림 3>창내 막집 복원그림
박희현,<창내의 후기 구석기시대 막집의 구조와 복원>(≪博物館紀要≫6, 단국대 중앙박물관, 1990).

 복원된 막집의 바닥은 불규칙하지만 둥근 모양이고 전체 모양은 원뿔 모양이다. 바닥의 가장 긴 축의 길이는 약 4.6m이고 가장 짧은 쪽은 약 3.4m이다. 집의 높이는 약 3.6m이고 사용된 기둥의 길이는 4∼4.6m에 이른다. 막집의 내부면적은 약 10㎡로 3∼4명이 생활했던 공간으로 짐작된다. 이 막집은 화덕을 집 밖에 만들었던 점과 석기의 출토 성격으로 보아 여름철에 강가에서 사냥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이용했던 집으로 해석된다.

라) 화순 대전유적

 대전유적154)은 보성강가의 구릉지대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후기 구석기 시대의 한데막집터를 찾았다. 이 곳에서는 기둥자리와 강자갈을 깐 구조물을 확인하였다.

 기둥자리는 24개로 확인되었으며 1∼2m 정도의 간격으로 서로 대칭되게 길게 분포되었다. 각 기둥구멍의 지름은 5.5∼28㎝이고 깊이는 5∼56㎝이다. 출입문 부분의 기둥구멍의 깊이는 각각 33㎝·56㎝로 다른 것보다 매우 깊은 편이다. 기둥은 10개의 기둥을 두 개씩 서로 마주 보게 하여 세웠다. 기둥구멍의 기울기는 51˚∼88°사이로 나타났다. 각 기둥구멍이 표면 높이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집터는 남서쪽으로 기울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화덕자리는 후대에 훼손되어 찾아볼 수 없으나 집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대전유적의 막집터도 출토된 석기의 특징으로 보아 후기 구석기시대의 한데집터로 밝혀졌다.

 대전유적의 막집은 다음과 같이 복원된다. ① 우선 가운데 축에 중심 기둥을 2개 세우고 종도리를 올렸다. ② 이어 양쪽 옆에서 나무를 휘어서 기둥을 세우고 종도리에 묶었다. 기둥에 따라서 버팀목을 세워 기둥을 받치도록 함께 묶기도 하였다. ③ 기둥을 모두 세운 후 기둥 사이의 공간에 잔가지를 걸치거나 기둥 위에 가죽을 덮어 막집을 완성하였다. ④ 출입문은 강물이 흐르는 남서쪽에 만들었다. ⑤ 집의 뒤쪽에 별도로 말뚝을 세워 중심 기둥과 줄을 연결하여 막집을 튼튼하게 고정시키도록 하였다(<그림 4>).

<그림 4>대전 막집 복원그림
李隆助·尹用賢,≪和順 大田 舊石器時代 집터 復元≫(忠北大 先史文化硏究所, 1992).

 복원된 대전 막집의 모양은 모를 죽인 긴 타원형이고 남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집이다. 집의 높이는 6m쯤 된다. 막집의 내부면적은 약 30㎡ 정도로서 7∼10명이 생활했던 공간으로 생각된다. 내부에는 강자갈을 깐 것으로 보인다. 이 막집은 화덕이 집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추운 계절에 지었던 생활주거로 짐작된다.

147)동굴내의 집터가 복원된 유적으로는 프랑스 니스에 있는 라자레유적을 대표로 들 수 있다(Lumley, H. de, et, Une Cabane Acheuléenne dans la Grotte du Lazaret, Nice, Mémoire de la Société Préhistorique Française Ⅶ, Paris, 1969, éd. Les Premiers Habitants de l'Europe : 1,500,000-100,000 ans, 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Paris, 1982, pp.133∼139).
148)Leakey, M. D., Olduvai Gorge, vol. III : Excavations in Beds I and II, 1960∼63, Cambridge Univ. Press, Cambridge, 1971.
149)Jelinek, J., Dwellings and Settlements of Stone Age Man, The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Evolution of Man, Hamlyn, London, 1975, pp. 211∼274.

Combier, J., Les Habitats de Plein Air, Les Dossiers Histoire et Archéologie 87, France, 1984. 10, pp. 34∼40.

梶原 洋,<ソビエトの舊石器時代住居址>(≪月刊考古學ジャ-ナル≫262, ニュ-·サイエンス社, 東京, 1986. 5), 8∼14쪽.

박희현, 앞의 글, 5∼6쪽.
150)김용간·서국태,<서포항원시유적 발굴보고>(≪고고민속론문집≫4, 사회과학출판사, 1972), 36∼38쪽.

김용남·김용간·황기덕,≪우리나라 원시집자리에 관한 연구≫(사회과학출판사, 1975), 5쪽.
151)孫寶基,<石壯里의 후기 구석기시대 집자리>(≪韓國史硏究≫9, 1973), 3∼57쪽.

―――,<舊石器時代 : 人種과 住居址>(≪韓國史論≫12, 國史編纂委員會, 1983), 202∼205쪽.

―――,≪석장리 선사유적≫(동아출판사, 1993).
152)손보기, 위의 책.
153)박희현,≪제원 창내 후기 구석기문화의 연구≫(연세대 박사학위논문, 1989).

―――, 앞의 글, 3∼24쪽.
154)李隆助·尹用賢,≪和順 大田 舊石器時代 집터 復元≫(忠北大 先史文化硏究所, 1992), 49∼5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