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동굴집터
인공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이용한 예로는 의주 미송리,500) 춘천 교동,501) 단양 상시바위그늘502)·도담리 금굴바위그늘503)·수양개유적,504) 제천 점말동굴,505) 부산 금곡동 율리바위그늘,506) 제주 북촌바위그늘,507) 청도 오진리바위그늘508) 등이 알려져 있다.
미송리동굴집터는 석회암반에 뚫려 있는 자연동굴을 이용한 것으로 바닥에는 20∼40㎝ 정도의 진흙층이 있는데 그 아래·위에 유물층이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유물이, 위층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오랜 기간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교동동굴유적은 鳳儀山 동쪽 경사면에 있는 풍화화강암반을 인공으로 파 들어가 만든 것으로 동굴 내부는 지름 4m가량의 둥근 모양이고 천장은 반달모양이다. 굴의 바닥은 흙을 깔고 다졌으며 천장의 입구 쪽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집터로 추정하고 있다. 폐기된 이후에는 무덤으로 쓰였다.
상시리 3바위그늘집터는 넓이 14㎡의 자그마한 유적으로 입구의 길이는 4m이고 그늘 안의 길이는 9m이며 안으로 갈수록 좁고 낮아진다. 모두 6개층의 문화층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최하층의 6층은 후빙기 이전의 문화층이며, 5층은 적색점토층으로서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가 출토되었다. 4층은 적색사질토층으로 덧무늬토기가 출토되었으며 갈색모래층인 3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1·2층은 흐트러진 층으로서 빗살무늬토기·석기·뼈제품 등이 사람뼈·동물뼈와 함께 출토되었다. 출토유물로 보아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말기까지 형성된 유적으로 보인다.
도담리 금굴유적은 남한강의 강안 언덕에 형성되어 있는 동굴유적으로 강의 수면보다 5.4m 위에 있으며 동굴의 크기는 높이 8m, 길이 8.5m, 최대너비가 7∼10m 정도이다. 모두 8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Ⅷ-Ⅲ층이 구석기문화층이고, 4개의 작은 층으로 세분되는 Ⅱ층은 Ⅱㄴ층이 신석기문화층이며, Ⅱㄱ층이 청동기문화층이다.
유물로는 다량의 빗살무늬토기조각을 비롯하여 그물추·찍개·망치돌 등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뼈제품과 함께 각종 동물뼈와 조가비들이 출토되었는데 신석기시대 후기의 유적으로 생각된다.
북촌리유적은 주민들에 의해「고두기언덕」이라 불리는 해발 20m 내외의 구릉에 위치하는 용암동굴의 천장부가 무너져 최대지름 50m의 함몰지가 형성된, 동북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즉 절벽 아래가 움푹 꺼져 들어가 형성된 이른바 바위그늘집터이다. 집터의 입구너비는 11m, 입구에서 안쪽까지의 길이는 3m,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2m, 면적은 30㎡ 정도이며, 입구는 정남쪽으로 트여 있다. 대개 5개의 자연층위로 구분되지만 유물은 대부분 흐트러진 층에서 수습되었다.
500) | 김용간,<미송리동굴유적 발굴중간보고>(≪문화유산≫ 196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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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 金元龍,<春川校洞穴居遺蹟 및 出土遺物>(≪歷史學報≫ 20, 1963). |
502) | 손보기,<단양 상시유적 발굴중간보고>(≪한국고대사의 조명≫, 충북대, 1981). 홍현선,<상시 3바위그늘의 문화연구>(연세대 석사학위논문, 1987). |
503) | 손보기,<단양 도담리지구 유적발굴조사보고>(≪’84 忠州댐水沒地區 文化遺蹟發掘調査綜合報告書≫, 1984). |
504) | 이융조,≪’83忠州댐水沒地區 文化遺蹟發掘調査略報告書≫(1983). |
505) | 이융조,≪점말동굴 발굴보고≫(1980). |
506) | 金廷鶴·鄭澄元,≪金谷洞栗里貝塚-岩蔭住居遺蹟≫(釜山大 博物館, 1980). |
507) | 濟州大博物館,≪北村里遺蹟-신석기시대 바위그늘 집자리≫(1988). |
508) | 釜山大博物館,≪淸道 梧津里 岩蔭遺蹟≫(雲門댐水沒地域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1, 1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