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대동강중심설
고조선의 중심을 大同江유역에서 찾는 견해는 중국측 학자들과 대부분의 우리 나라 전통 학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중국학자의 견해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水經≫에 주석을 가한≪水經注≫의 저자 酈道元이다. 역도원은 北魏時代(469∼527) 사람으로 북위에 온 고구려 使臣에게 樂浪의 위치가 平壤城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기록을 남겨181) 고조선 평양중심설의 가장 확실한 근거를 남겨 놓았다. 이같은 견해는 이후 고조선 평양중심설의 가장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한편 우리 나라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一然의 견해이다. 즉 일연은 단군조선에 관한 서술에서<魏書>및<古記>를 인용하였는데 관련 지명들에 관한 주석에서 대부분의 지명을 평양과 그 인근지역에 비정하였다.182) 이는 결국 이같은 인식이 고려시대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東國通鑑≫이나≪東國輿地勝覽≫183)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지는 鴨綠江 이남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후 조선 중기의 대표적 지리서인 韓百謙의≪東國地理誌≫에서는 고조선과 三韓이 漢江을 경계로 존재하였다는 체계를 세움으로써 이후 고조선의 강역이 압록강 이남지역 즉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견해가 일반화되었다.184) 이러한 견해는 安鼎福의≪東史綱目≫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한편 일부 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던 요동설에 대한 비판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19세기의 丁若鏞은 고조선의 중심지는 한반도안에 있었으며 후에 영토를 확장하여 遼西를 점령하고 燕과 국경을 접하였다는 보다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또한 韓致奫의≪海東繹史≫와 韓鎭書의≪海東繹史續≫에서는 고조선의 강역은 요서지방을 훨씬 넘어섰으나 그 수도는 평양이었다는 견해를 보여주었다.185)
고조선의 대동강중심설은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일본인 학자 및 우리 학자들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 일본인 학자들은 이를 식민지배의 역사적 설명도구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굴된 평양 일대의 중국계 유물·유적을 결정적 증거로 활용하였다.186) 우리 나라 학자들은 아사달을 현재의 평양으로 보고≪史記≫의 浿水를 淸川江으로,≪魏略≫의 滿潘汗을 博川江 일대로,≪漢書≫의 列水를 大同江으로 보아 고조선의 강역을 지금의 평안남도지역으로 비정하였다.187) 한편 북한학계에서는 1960년대 초반 일련의 고고학 관련 학자들이 평양지역의 유적·유물을 근거로 평양중심설을 주장하였으나, 공식적 입장이 요동설로 정리된 이후 이같은 견해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최근 檀君陵 발견이 공식적으로 공표되면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188)
181) | 酈道元,≪水經注≫浿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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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 ≪三國遺事≫권 1, 紀異 2, 古朝鮮. 일연은 阿斯達을 開城주변, 太白山을 妙香山으로 비정하고 檀君이 도읍한 平壤城을 西京 즉 현재의 평양으로 보았다. |
183) | ≪東國輿地勝覽≫권 51, 平壤府 建置沿革條. |
184) | 韓百謙,≪東國地理誌≫後漢書 三韓傳. |
185) | 이같은 조선 중후기의 한반도를 강조하는 분위기는≪滿洲源流考≫로 대표되는 만주사 부각에 대한 학문적 반박으로 파악되고 있다(韓永愚,≪朝鮮後期 史學史硏究≫, 一志社, 1989, 432쪽). |
186) | 趙法鍾,<樂浪問題(平壤地域文化)에 대한 日本歷史學界의 認識檢討>(≪宋甲鎬敎授停年退任記念論文集≫, 1993), 551∼555쪽. |
187) | 그런데 이러한 李丙燾의 견해는 그가 주로 이용한 자료가 古朝鮮의 위치비정에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는≪史記≫의 朝鮮列傳이 아니라≪한서≫지리지이고 또 위치비정을 위한 언어학적인 고찰도 방법상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다(徐榮洙, 앞의 글, 24∼29쪽). |
188) |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평양 근교의 강동군 강동읍의 대박산에 있는 무덤에 대하여<단군릉 발굴보고>(1993. 10. 2)를 발표하고 곧이어 10월 12일<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 발표회>를 개최하여 이 무덤이 단군릉임을 확정지었다. 종래 이 무덤은≪동국여지승람≫에 속설로서 단군릉이라고 일컬어져 오던 것으로, 기왕에 주장되었던 고조선 요동중심설과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른바 단군릉과 관련하여 다음 자료가 참조된다. 이형구 편,≪단군을 찾아서≫(살림터, 1993). 북한문제연구소 편,≪북한의 단군릉 발굴관련 자료≫(19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