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1. 부여의 성립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백금보문화가 존재한 같은 시기에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기원전 7∼3세기까지로 비정되는 청동기문화로서 西團山文化가 있다.390) 이 문화의 성격과 족속문제에 대한 연구는 부여 및 그 先世문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 문화는 제2송화강을 중심으로 하여 길림시 서단산·長蛇山·兩半山·猴石山·星星哨와 土城子 등지에 집중되어 있다. 이 문화의 분포범위는 남북으로 제1송화강 이남, 張廣才嶺 이서와 柳河·휘발하 등 길림 哈達嶺 이북지구에 이른다. 이 문화의 담당 족속문제에 관해서는 종래 숙신설과 예맥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예맥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391)

 서단산문화의 대표유적인 서단산 석관묘군은 하나의 씨족공동묘지로서 마제돌도끼·반월형석도·끌·갈판 등의 농업생산 도구가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토기는 모두 모래가 섞인 삼족기(鼎·鬲)·시루(甑)·물동이(罐)·굽접시(豆)·鉢 등이 나오고 있다. 이는≪삼국지≫부여조에 “(토지가) 오곡 농사에 적합하다”는 것과 “음식을 먹는 데에는 俎豆를 사용한다”는 내용과 서로 부합한다. 한편 돼지뼈와 어망추가 많은 것으로 보아 농업·가축사육·漁獵경제의 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392) 이 서단산문화는 전성기인 천년기 중기에는 騷達溝 평정산의 山頂大棺처럼 대형 석관이 산정에 단독으로 부장되고, 銅斧나 刀子 등 청동기가 17점이나 발견될 정도로 한 지역 首長의 권한이 상당히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서단산문화 晩期에 속하는 장사산393) 및 토성자394)나 楊屯 大海盟395)단계(기원전 3∼2세기)에 이르면 더욱 뚜렷해지고 묘제도 석관묘에서 토광묘로 교체되면서 철기가 부장되게 된다.396) 대표적 서단산문화 후기(기원전 4∼3세기)유적인 토성자·양둔 대해맹·농안 田家坨子유적397) 등에서는 물동이·굽접시·사발(碗) 등의 토기가 나왔고 묘제 또한 토광목곽묘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한서 상층-망해둔문화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조금 후대인 부여 초기단계의 것으로 비정되는 길림시 泡子沿前山유지398)의 상층 퇴적층과 백금보문화지역에 가까운 楡樹縣 老河深유적 출토토기와도 동일하다(<그림 2>,<그림 3>참조).

<그림 2>백금보-한서문화 토기
1∼2. 漢書Ⅰ期, 3∼5. 白金寶문화, 6∼9. 漢書Ⅱ期

<그림 3>서단산문화 및 부여문화 토기
1. 長蛇山, 2. 星星哨, 3. 泡子沿前山, 4. 東團山.

 포자연전산유형은 지역분포가 서단산문화와 기본적으로 중첩되는데, 이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길림지구의 서단산문화를 직접 승계한 초기 철기문화라고 볼 수 있다. 토기는 주로 항아리·물동이·굽접시·발 등이 항상 보이고, 가로로 붙인 橋狀耳와 젖꼭지형 손잡이가 유행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서단산문화의 주요한 특징과 淵源을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수 노하심 中層文化에서 발견된 유물은 주로 墳墓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부장토기는 거친 夾砂陶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주로 항아리·물동이·굽접시·발 등이며 가로로 붙인 교상이와 젖꼭지형 손잡이가 있어 포자연전산유형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 포자연전산과 노하심문화가 모두 직접적으로 동일지점에서 서단산문화를 파괴한 층위관계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또한 포자연전산과 노하심유적에서는 모두 서단산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중국 漢代의 특징을 갖고 있는 철제 钁·斧·鍤·鎌 등 농업생산도구가 발견되었다.399) 따라서 이 두 유형은 마땅히 서단산문화를 직접 계승한 한대 부여의 문화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포자연전산과 유수 노하심문화유형은 그 분포가 북으로는 송화강 북안의 흑룡강성 肇源縣 望海屯유지에 이른다. 출토 토기의 재질과 기형 및 토광목곽묘라는 매장습속에 있어서도 한서 상층-망해둔유형과 동일하다. 이들은 중국 한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한대 부여시기의 지배집단의 전형적 토광목곽묘가 帽兒山 등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400) 이는 제1송화강과 눈강 일대 및 제2송화강지역이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주민집단도 어느 정도 동일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상의 정황은 한서 상층-망해둔문화가 고리국의 문화이고, 그들 주민들이 제2송화강 중류로 남하하여 지금의 길림을 중심으로 한 ‘穢地’에서 서단산문화를 누리던 부여 선주민과 융합하여 부족국가 부여를 건립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401)≪삼국지≫권 30, 魏書 東夷傳에 濊人은 이전에 이미 국가를 건립하였으며, “그 도장의 문구가 ‘濊王之印’이라 했고, 나라에는 ‘故城’이 있는데 이름을 ‘濊城’이라고 했다. 따라서 동명은 ‘스스로를 일러 亡人’이라 했는데 아마도 그러한 것 같다”라고 한 것은 바로 동명의 남하와 그에 따른 고리국과 부여가 일정 기간 병존한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예성은 길림시 송화강 동안의 龍潭山山城 혹은 東團山 南城子 일대에 비정되고 있으므로402) 그 위쪽에 존재한 한서 상층-망해둔문화는 고리국의 문화일 가능성이 높다.403) 앞에서 보았듯이 서단산문화와 백금보문화는 토기 등의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한서 상층-망해둔문화와 서단산문화 후기단계의 묘제 및 유물은 기본적으로 같은 주민계통의 문화로 볼 수 있으므로 동일 시기에 병존한 부여 선주민의 문화로 여겨진다.404)

390)董學增·李澍田,<談略西團山文化的族屬問題>(≪東北師大學報≫2期, 1984).

李健才,<關于西團山文化族屬問題的探討>(≪社會科學戰線≫4期, 1985).

董學增, 앞의 책.
391)서단산문화의 중심 분포지역은 송화강 중류로서 땅이 비교적 平闊하며 5곡 농사에 적합하다. 이것은≪後漢書≫에 기재된 “동이의 지역에서 가장 평창하고 오곡에 적합하다”는 기재와 들어맞는다. 서단산문화 유형은 대개 반지하 혹은 석축으로 주거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길림시 東團山 일대에서 漢과 한 이전의 유지 중에 대략 원형을 나타내는 土城이 발견되고 있다. 이 점은 부여가 “圓柵으로 성을 쌓고 궁실·창고·감옥이 있다”는 기재와(≪後漢書≫권 85, 列傳 75, 東夷 夫餘國) 부합한다. 따라서 서단산문화는 예족, 즉 부여 선주민의 문화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것 같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이 참고된다.

리병선,<압록강 및 송화강중상류 청동기시대의 문화와 그 주민>(≪고고민속≫3기, 1966).

李健才, 위의 글.

정상석,≪西團山文化와 初期扶餘≫(東亞大 碩士學位論文, 1996)).
392)王亞注,<吉林西團山子石棺墓發掘記>(≪考古≫4期, 1960).

東北考古發掘團,<吉林西團山石棺墓發掘報告>(≪考古學報≫1期, 1964).
393)장사산 촌락유적은 산 경사지의 방어적 성격을 띤 촌락으로, 5채 안팎의 가옥이 2∼3m 거리로 배치되어 7개의 세대공동체가 한 고장에 자리잡은 원시공동체 말기의 촌락공동체였다는 연구가 있다(황기덕,<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사회관계>2,≪조선고고연구≫4, 1987, 4∼6쪽).
394)吉林省博物館,<吉林江北土城子古文化遺址及石棺墓>(≪考古學報≫1期, 1957)
395)吉林市博物館,<吉林永吉楊屯大海盟遺址>(≪考古學集刊≫5, 1987)

吉林省文物工作隊,<吉林永吉楊屯遺址第三次發掘>(≪考古學集刊≫7, 1991)
396)장사산유적에서 발굴된 15기의 주거지 가운데는 구조가 복잡하고 유물이 풍부한 것과 구조가 매우 간단하고 유물도 매우 적은 것이 있다. 이것은 이미 이 당시(기원전 5∼3세기)에는 사유재산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생겨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토성자유적(기원전 3∼2세기)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발굴된 24기의 석관묘에서는 반수에 달하는 무덤들에서 부장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吉林省文物工作隊,<吉林猴石山遺址及墓群發掘報告>,≪考古≫2期, 1980 및 吉林省博物館, 앞의 글).
397)吉林大學歷史系 考古專業,<吉林農安田家坨子遺址試掘簡報>(≪考古≫2期, 1979).
398)吉林市博物館,<吉林市泡子沿前山遺址和墓葬>(≪考古≫6期, 1985).
399)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楡樹老河深≫(文物出版社, 1987).
400)토기와 묘제의 유사성이 있지만 유수 노하심유적이 부여의 유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노하심유적은 많은 부분에서 서단산문화와 차이를 보이고 있고, 특히 透雕의 金飾牌라든지 火葬에 의한 매장방식 등 鮮卑(烏丸)계통의 양식도 많이 보여주고 있어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이 유적이 부여의 영역내에 분포하고 있고 토기 등이 부여의 유적에서 나오는 것과 동일한 점 등에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嚴長錄,<扶餘의 遺蹟과 遺物에 對하여>,≪民族文化의 諸問題≫, 世宗文化社, 1994, 204∼210쪽).
401)백금보·한서 상층문화는 부여의 원류집단인 고리국의 문화로 보는 것이 요즈음 중국학계의 입장이다(干志耿, 앞의 글 및 孫進己·張志立, 앞의 글).
402)李健才,<夫餘的疆域和王城>(≪社會科學戰線≫4期, 1982), 170∼173쪽.

武國勳, 앞의 글.
403)최근 흑룡강성 濱縣 동쪽에서 ‘慶華古城’이 발견되었다. 1984년 조사시에 이 성은 부여보다 빠른 古城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고고유물과 방위상으로 보건대 이는 漢初에 남천한 ‘濊城’ 이전의 古夫餘의 先世인 ‘橐離國’의 故地로 보는 견해가 있다(王綿厚,≪秦漢東北史≫, 1994, 175쪽).
404)馬德謙,<夫餘文化的機個問題>(≪北方文物≫2期, 1991), 18∼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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