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2) 부여의 대외관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부여의 대외관계

(1) 고구려와의 관계

 부여와 주위의 여타 족속과의 관계 중 비교적 밀접한 것이 고구려와의 관계였다. 처음에 그들 사이에는 군사적 연맹이 성립되어 있었으나, 고구려의 역량이 부여를 능가한 이후에는 곧바로 부여를 병탄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여는 한과 함께 공동으로 고구려에 대항하게 되고, 그 결과 고구려와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어 결국 고구려에게 병합되었다.

 부여가 아직 강성하였던 기원전 1세기에 그 남쪽에서는 고구려가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처음 부여로부터 도망와서 계루부를 건국하였다.508) 따라서 초기에는 부여와 새로 건국된 같은 예맥계통의 나라인 고구려는 우호적 관계였다. 부여가 고구려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 先王(金蛙王)이 그대의 선왕인 동명왕과 서로 사이가 좋았다”509)고 한 것은 고구려 건국 초기에 두 나라가 화친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삼국사기≫고구려본기 태조대왕 25년(77)에 “부여가 사신을 보내어 뿔이 세 개 달린 사슴과 긴 꼬리의 토끼를 바쳤다”는 기사와, 같은 왕 53년에 “부여가 사신을 보내어 호랑이를 바쳤다”는 기사도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태조대왕 69년(121)에 “왕이 부여에 행차하여 태후의 廟에 제사하였다”510)는 기사를 통해서도 화친관계가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건국 초기부터 예속 및 화친관계를 유지하던 고구려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부여는 힘에 의해 고구려 왕실을 계속 예속시키려고 하였다. 처음에 부여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볼모교환을 요구하였다. 이 때 국력이 아직 약하였던 고구려는 하는 수 없이 태자 都切을 볼모로 보내려고 하였으나, 도절이 두려워 가지 않자 이에 분개하여 부여에서는 5만 명의 군사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511) 그 후에도 부여는 외교적 방법으로 고구려 왕실을 계속 위협함으로써 고구려를 예속시키려고 하였다. 9년에 부여는 고구려에 보낸 편지에서 부여와 고구려를 大國과 小國의 관계로 표현하고 소국인 고구려가 대국인 부여를 섬기는 것은 응당한 도리라고 강조하였다. 계속하여 부여의 요구를 듣지 않을 때에는 고구려왕조를 더는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무력행사의 의사까지 드러냈다.512) 이에 대해 고구려는 아직 부여와 싸울 만한 힘이 없었으므로 겉으로는 부여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처럼 하였으나 실제로는 부여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장차 부여와의 싸움을 위하여 국력을 키워 나가려고 하였다.513) 그 후 고구려의 세력이 급속히 강화됨에 따라 두 나라 사이의 역량은 점차 균형상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3년 부여는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의 매복에 걸려 鶴盤嶺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514) 이것은 부여의 고구려에 대한 군사적 우세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여는 고구려와의 관계에서 점차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고구려는 부여로부터의 위협과 압력을 제거하고 그 지역을 통합하기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마침내 부여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하였다.

 고구려군이 22년 2월에 부여의 남쪽 계선에 이르자 이에 대항하여 부여는 전국의 군사들을 총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의 휘발하유역으로 추정되는 부여의 남쪽 진펄지대에서 두 나라 군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515) 이 전쟁에서 부여는 비록 고구려군을 물리쳤으나 국왕과 수많은 군사들을 잃어버렸다. 또한 부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통치층 안에서 불안과 동요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고구려로 넘어가는 자들이 늘어났다. 대소왕이 죽자 그의 동생(금와왕의 막내아들)은 22년에 曷思水에 이르러 갈사국을 세웠다.516) 같은 해에 금와왕의 사촌동생이 1만여 명을 이끌고 가서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고구려 왕실에서는 그를 연나부지방에 안착시키고 ‘絡’씨라는 성을 주어 특별히 우대하였다.517) 이같은 전쟁과 대소왕의 전사를 계기로 통치층 안에서 일어난 와해상태는 부여의 국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2세기를 넘어서면서 부여는 고구려의 발전을 견제하기 위하여 후한과 밀접한 외교관계를 전개하였다. 또한 평야지대이면서 농사에 유리했던 요동군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대립하였다. 105년 고구려는 요동군의 6현을 일시 빼앗았으나 격퇴되고, 111년에는 부여가 낙랑군을 공격하였다. 118년에는 고구려가 현도·낙랑을 공격하였고, 2년 뒤인 120년에도 현도성을 공격하자 부여는 고구려 군대에 맞서 싸웠다. 120년에 부여왕이 尉仇台를 후한에 파견한 것도 고구려의 현도성 공격과 관련된 것으로,≪후한서≫孝安帝紀의 “부여왕이 아들을 보내어 병사를 거느리고 현도성을 구원하고 고구려·마한·예맥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마침내 사신을 보내 공헌하였다518)”는 기사는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삼국사기≫에도 고구려 태조왕 69년(121)에 “왕이 마한·예맥의 1만여 기를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병사 2만을 거느리고 한나라 병사와 힘을 합하여 맞서 싸웠으므로 아군이 대패했다”는 기사와 또 1년 뒤에 “왕이 마한·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략함에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어 현도를 구원하는 동시에 우리 군을 깨뜨렸다”고 한 기록은519) 고구려의 활발한 요동진출을 견제하기 위하여 부여가 후한과 밀접한 군사외교를 전개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부여가 북방의 한랭한 땅인 송화강유역에서 온난한 요하유역으로 진출을 기도한 것이나, 고구려가 압록강 중류의 산간지대에서 농경지로서 혜택을 입은 요동군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것은 그 경제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요청이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후한정권은 이러한 대립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민족 지배정책을 실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520)

 그러나 부여는 3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서쪽에서 성장하는 선비의 세력과 고구려의 압력에 의하여 국가적 성장이 저지되고 국력이 점점 쇠약해졌다.

508)盧泰敦, 앞의 글(1993), 37∼68쪽.
509)≪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琉璃明王 28년 8월.
510)≪三國史記≫권 15, 高句麗本紀 3, 太祖大王 25년 10월·53년 정월·69년 10월.
511)≪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琉璃明王 14년 정월·11월.
512)≪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琉璃明王 28년 8월.
513)위와 같음.
514)≪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琉璃明王 32년 11월.
515)≪三國史記≫권 14, 高句麗本紀 2, 大武神王 5년 2월.
516)≪三國史記≫권 14, 高句麗本紀 2, 大武神王 5년 4월.
517)≪三國史記≫권 14, 高句麗本紀 2, 大武神王 5년 7월.
518)≪後漢書≫권 5, 帝紀 5, 孝安帝 延光 원년 2월.
519)≪三國史記≫권 15, 高句麗本紀 3, 太祖大王 69년 12월·70년.
520)井上秀雄,≪古代朝鮮≫(日本放送出版協會, 1972), 39∼4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