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4. 부여의 문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부여의 문화

1) 신앙과 제의

 농경생활이 본격화됨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안정되었다. 그들은 농경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의 질서를 발견하게 되었고, 나아가 그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을 더욱 안정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동체적인 질서 속에서 집단적인 행동이 가능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적 祭儀로 나타났다.630)

 부여에서는 혈연의 유대가 사회구조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러한 혈연을 통한 공동의식의 강조는 거족적인 부족공동제사를 통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부여인은 “殷正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국중대회는 연일 계속되며, 음식을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이를 迎鼓라고 했다. 군대를 동원할 일이 있으면 또한 하늘에 제사했다”631)는 것에서 보듯이 1년에 1회 12월에 영고라는 국중대회를 거행하였다. 영고는 국중대회로서 고구려의 東盟祭(10월), 동예사회의 舞天祭(10월), 마한의 10월제와 꼭 같은 성격의 제례로 씨족사회의 유습을 계승한 일종의 수확감사제였다. 그러나 부여가 고구려나 동예와 달리 추수감사제를 본격적인 사냥철이 시작되는 시기인 은정월(12월)에 거행하였던 것은 공동수렵을 행하던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632) 이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하늘은 신령이 거처하는 곳으로 만물일체를 주재하여 복을 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고라는 말은 수확감사제에 해당하는 부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으나,633) 맞이굿(迎神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634) 특히 북을 활과 화살처럼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신비력을 지녔다고 믿어 왔던 예맥족사회의 풍속으로 미루어 보아, 부여의 영고는 이를 반영한 종교적 의례였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북은 가무로써 신을 즐겁게 하는 샤먼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祭具이며, 국중대회에서 공동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공동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흉노족이 5월에 龍城에서 대회를 열어 그 조상과 천지귀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선비도 季春의 饒樂水에서 大會를 가졌다는 것을 보면635) 영고와 같은 제천행사는 북방 유목사회의 공통적인 습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흉노족은 각 分地 내의 단위집단을 누층적으로 편제하는 형태로 국가체제를 확립하였기 때문에, 부족적 차원의 제천행사를 국가적 제전으로 승격시켜 흉노 국가 전체의 결속력을 높이는 한편 각 左右王長과 분지 내부의 단위집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천행사시에 諸長會議를 개최하여 국가 중대사를 의결하였던 것이다.636) 사출도로서 지방을 일정한 단위로 나누어 통제하던 체제를 가지고 있던 부여의 경우도 국중대회의 모습이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축제 때에는 노예나 외래민을 제외한 전 부여의 읍락민들이 참여하여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면서 서로간의 결속을 도모하였다. 부여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노래부르기를 그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삼국지≫에서는 노인과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종일토록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였다.637) 136년에 부여왕이 친히 낙양에 가서 조공을 바쳤는데 漢의 順帝는 일행을 성대하게 대접하고, 특히 그들을 위해 북과 나발을 불고 角抵戱를 하여 환송하였다.638) 이것 또한 부여인이 음악과 가무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부여에서는 국중대회 때 제천행사와 동시에 刑獄을 판결하고 죄수를 석방하였다.639) 수도에서는 전국의 족장에 해당하는 諸加들이 모여 왕을 중심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지난 한 해를 결산하며 주요문제를 토의하여 국가의 통합력을 강화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삼국지≫부여조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의 경우 3세기 중엽 왕권이 강화되기 이전의 어느 시기에는 그 해의 풍흉에 따라 왕을 교체하거나 살해하였다고 한다.640) 한 해의 풍흉이 결정되는 시기에 왕을 살해하거나 교체하였다는 것은 왕의 치폐가 제천행사시의 회의를 통해 의결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제천행사 때의 회의체의 이러한 기능은 왕권이 확립되고 국가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그대로 지속되었다. 3세기의 사실을 반영하는≪삼국지≫에 “형옥을 처단한다”고 한 내용은 당시 부여에서는 제천행사시에 제가회의를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처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국중대회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하였는 바, 이 대회는 ‘加’라고 칭하는 고급 귀족관료들의 평의회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의에서 국왕은 최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부여사회는 아직 전국에 걸친 지배조직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지방의 각 부족들의 자치력이 온존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영고는 비단 민속적인 행사로서 뿐 아니라 정치적인 통합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장례를 후하게 한 것은 고대사회의 공통된 풍습이었다.641) 사람들은 죽으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여 일반적으로 厚葬을 하였다. 부여에서는 보통 送葬을 멈추어 두는 停喪기간이 5개월에 미칠 정도로 상주는 장사를 속히 지내려 하지 않고 남의 강권에 의해 행하는 것을 예절로 알았다. 그리고 여름에는 얼음을 써서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고자 하였고 또한 많은 부장을 하였다. 나아가 貴人에 대한 순장의 풍습은 한·위시대까지도 행하여져 많은 때에는 그 수가 백에 달했다고 한다.642) 장례를 치를 때에는 남녀 모두가 순백색의 의복을 입고, 특히 부인은 布面衣를 입고 패물이나 고리는 차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643) 등은 귀족계급에게 있어 祖先숭배사상이 극히 엄격하고 상당히 복잡하였던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특히 王葬은 玉匣을 사용했고 鏤金한 옥으로 만든 옷을 입혔다고 한다.

<그림 10>帽兒山 M1목곽무덤

 ≪삼국지≫동이전 부여조에 의하면 부여인들은 죽은 이를 위해 棺은 쓰되 槨이 없는 무덤을 쓴다고 하였다. 이것은 부여에서 이른바 土壙木棺(槨)墓가 널리 유행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원전 3세기를 지나면서 송눈평원과 송요평원의 부여 중심지역에서 토광목관묘가 주된 묘제로 사용된 점에서 증명된다.

630)李基白·李基東,≪韓國史講座≫古代篇(一潮閣, 1982), 117쪽.
631)≪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632)부여에서 영고가 12월에 거행된 것은 12월경의 짐승들이 가장 肥味하고 대개 동굴에 칩거하며, 눈 위의 발자국에 의하여 그 소재를 용이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를 타서 씨족 전원이 공동으로 수렵을 하여 그것으로 대대적인 제천의식을 행하였던 것이니, 고대 한민족의 소위 巡狩란 것도 이러한 제례의 발전형태였다고 한다(孫晋泰,≪朝鮮民族史槪論≫, 乙酉文化社, 1947, 61쪽).
633)李丙燾,<夫餘考>(≪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5), 223쪽.
634)김택규,<迎鼓考>(≪國語國文學硏究≫2, 1958).

梁在淵,<魏志東夷傳에 나타난 祭天儀式과 歌舞>(≪魏志東夷傳의 諸問題≫, 1979).

李亨求,≪韓國 古代文化의 起源≫(까치, 1991), 107∼113쪽.
635)≪史記≫권 110, 列傳 50, 匈奴.
636)林 幹,<匈奴社會制度初探>(內蒙古自治區 第一會歷史科學討論會 發表文, 1962;≪匈奴史論文選集≫, 1983).

護雅夫,<北アジア·古代遊牧國家の構造>(≪世界歷史≫6, 岩波書店, 1971).
637)≪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638)≪後漢書≫권 85, 列傳 75, 東夷 夫餘國.
639)한 때 ‘斷刑獄 解囚’를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를 풀어준다’로 해석하였는데 최근에 ‘형옥을 판결하고 죄수를 풀어준다’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李基白,<한국고대의 裁判과 祝祭>,≪歷史學報≫154, 1997).
640)≪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641)邊太燮,<韓國 古代의 繼世思想과 祖上崇拜信仰(上)>(≪歷史敎育≫3, 1958), 55∼69쪽.
642)≪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643)≪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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