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3. 부여의 정치와 사회2) 사회와 경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경제생활

 부여의 족장층으로 여겨지는 大人617)들은 외국에 나갈 때에 수를 놓은 비단옷에 모피 갓을 쓰고 이에 금은으로 장식을 하여 호사로움을 과시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족장층의 부는 상당하였고 그들에 의한 부의 집중이 진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여인들은 백금보문화나 서단산문화 단계에서는 주로 석기나 목기를 이용하여 농경을 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 이후에는 철기문화의 영향으로 쇠붙이로 만든 호미·가래·쟁기, 그리고 소와 말의 畜力 등에 의해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사회에서 이미 深耕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618) 그것은 牛耕이 가능한 시기에나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지나친 확대해석으로 생각된다.

 부여의 산업과 생산물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삼국지≫에 “토지는 오곡에 적합하고 五果는 나지 않는다”라고 한 사실을 통하여 부여의 기본 생업이 농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8만 호를 거느린 부여는 고대 초기국가 가운데서 토질이 가장 비옥하고 평탄한 지역을 차지하여 농업이 발달하였다. 부여 선주민의 문화인 서단산문화 晩期유적들에서는 돌도끼와 반달칼·돌호미 등이 출토되고, 형태가 다양한 많은 토기가 점차 규격화되고 있는 등의 사실로 보아 당시 주민들이 장기적인 정착생활과 농업을 위주로 한 경제생활을 영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단산문화 마지막 단계인 楊屯 大海盟유적에서는 갈돌 등 農具의 수량이 더욱 많아지고 형태도 다양해지며, 시루·좁쌀 등이 출토되고 있다.619) 이후 한-부여시기의 여러 고분 및 유지에서는 철제 삽과 낫 및 다양한 토기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철기시대 이후에는 금속제 농기구의 출현과 함께 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부여의 농업경영은 대체로 豪民들이 토지를 사유하고 下戶를 부려 농경에 종사하게 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옛 농업공동체의 생산형태도 遺制로서 남아 있었음이 명확히 보인다. “옛날 부여의 습속에 가뭄이 들어 농사가 흉년이 들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리고, 혹 왕을 바꾸거나 죽이기도 하였다”620)라는 기록은 곡식농사가 잘 되지 않았을 때에 생산경제의 계획자로서 왕에게 책임을 지우는 농업공동체 단계의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여에서는 농업과 함께 목축업도 성행하였다. 주요한 가축으로는 말·소·돼지·개 등이 있었다. 특히 부여의 대평원에서 생산되는 말은 유명하여 일찍이 외국에까지 알려졌다.≪삼국지≫동이전 부여조에는 “그 나라에서는 가축기르기를 잘하고 名馬와 赤玉·담비·아름다운 구슬이 난다. …여섯 가지 가축으로 관직이름을 정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부여에서 가축의 무리를 종류별로 전문적으로 길렀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621) 목축업은 부여족에게 가장 인연이 깊은 산업으로 농업과 서로 병존하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어느 의미에서 농업보다 더 선행된 중요한 생산부문이었다. 부여는 훌륭한 말을 산출하였으므로 농경민이면서도 기마풍습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보병과 함께 상당한 수의 기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소속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부여 전성기의 영역 내에 있던 西豊縣 西岔溝622)·東遼縣 石驛彩嵐유적623)이나 楡樹縣 老河深624) 목곽묘유적 등에서는 유목민들이 주로 사용한 철제 무기들과 마구, 그리고 銅製 飛馬牌飾이나 雙耳銅釜(鍑)가 나오고 있다. 또 學古東山이나 帽兒山 등 한-부여시기의 고분에서도 철제 무기와 마구·농기구 등이 동부 등과 함께 나오고 있다. 쌍이동부만을 놓고 본다면 이는 몽고지역625)이나 集安의 고구려유적에서도 적지 않게 출토되는 유목민계통의 유물이다. 또한 부여는 선비와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선비의 문물제도를 흡수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어 있었다.

 ≪삼국지≫동이전 부여조에는 3세기 중반 부여의 군사동원체계를 전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부여는 지배 귀족인 諸加들이 스스로 무장을 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다고 한다. 무장한 귀족들이 직접 말을 타고 금속제 병장기를 들고 기마전을 수행할 경우, 그 군사력은 대단히 높았을 것이다. 이처럼 부여족은 목축업의 발달에 따라 우수한 전투력을 지닐 수 있었다. 중국 사가들이≪삼국지≫부여조에서 “부여는 부유하고 선세 이래 타국에게 피해를 본 일이 없다”라고 한 것은 부여의 경제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여에서는 목축 외에 상업과 교통도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1세기 초에 이미 멀리 후한과 외교적인 관계를 맺은 이래 역대로 부여는 魏·晋의 여러 나라들과도 일정한 외교관계를 가졌는데 그 때마다 그 나라들과 대외무역이 이루어졌다. 특히 후한의 광무제가 부여의 조공에 후하게 보답했다626)든가 “후한 永寧 원년 부여 왕세자 尉仇台가 후한 낙양에 와서 공물을 바치자, 천자는 위구태에게 인수와 금색채단을 내렸다”627)는 기록 등은 단순히 封貢과 보답의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歲幣의 통교, 즉 상거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옛 중국인들이 부여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 모피류들과 좋은 말 및 구슬류 같은 특산물들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부여의 대외무역이 성행하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부여의 사회경제는 주로 기본 생산대중인 노예와 하호들에 대한 착취와 정복민인 읍루족에 대한 가혹한 수탈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부여사회에서 노예의 존재를 말해주는 순장이 행해졌다는 사실은 3세기 전반 부여사회의 일면에서는 공동체적 유대가 잔존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왕권이 점차 강화되어 가는 추세와 서로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순장은 일단 사유재산제의 발생과 함께 싹튼 노예제도에 의해 일정한 무리의 비자유인들이 하나의 생산수단으로서 부유층에게 소유되고, 그 결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유관계에 의거하여 그 소유자가 비자유인의 생살 여탈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장제는 노예제사회에서 성행할 수는 있으나 순장제의 성행이 곧 노예제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628) 오히려 순장은 순장하기보다는 그 노예를 상속인에게 물려주는 편이 富의 생산수단으로서 더욱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노예제도의 미발달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629)

 부여가 가장 강성했던 3세기 전반에 부여사회는 일면에서는 공동체적 유제가 잔존해 있었고, 다른 일면에서는 사회분화가 진전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체제에서는 연맹체적인 성격이 강인하게 존재하는 가운데서 왕권이 점차 강화되어 가는 추세를 보이는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宋鎬晸>

617)여기서 大人들은 아마도 大加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618)白南雲, 앞의 책, 135쪽.
619)劉景文,<西團山文化的農牧業發展探索>(≪北方文物≫2期, 1991), 13∼17쪽.
620)≪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621)부여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한 가축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보아 돼지였음을 알 수 있다. 吉林지역 서단산문화에서는 대부분의 석관묘에서 돼지뼈가 나오고 있으며, 특히 길림 土城子유적의 경우는 출토된 짐승뼈 중 돼지뼈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622)田 耘,<西岔溝古墓群族屬問題淺析>(≪黑龍江文物叢刊≫1期, 1984).
623)劉升雁,<東遼縣石驛公社古代墓群出土文物>(≪博物館硏究≫3期, 1983).
624)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編, 앞의 책.
625)潘 玲,<黑龍江友誼縣出土的鄂爾多斯式靑銅釜初探>(≪北方文物≫3期, 1994), 127∼128쪽.
626)≪後漢書≫권 85, 列傳 75, 東夷 夫餘國.
627)위와 같음.
628)노태돈,<한국인의 형성과 국가의 기원>(≪한국사특강≫, 서울大 出版部, 1990), 44쪽.
629)白南雲, 앞의 책, 132∼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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