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2.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2) 발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1. 고구려의 기원
        • 2.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1) 성립
            • (1) 나집단의 성장
            • (2) 나부체제의 성립
          • 2) 발전
            • (1) 국가체제의 정비
            • (2) 영역의 확대
      • Ⅱ. 고구려의 변천
        • 1. 체제정비
          • 1) 체제정비의 배경
          • 2) 소수림왕대의 체제정비
            • (1) 불교의 도입과 태학의 설립
            • (2) 율령반포의 의의
          • 3) 4세기말 이후의 체제정비
        • 2. 영토확장
          • 1) 요동 방면
          • 2) 백제 방면
          • 3) 신라 방면
          • 4) 낙랑·대방군 고지
          • 5) 기타 지역
        • 3. 5∼6세기의 대외관계
          • 1) 중국의 남북조와의 관계
          • 2) 백제·신라와의 관계
        • 4. 후기의 정세변동
          • 1) 한강유역의 상실
          • 2) 왕권의 쇠퇴와 귀족연립정권의 성립
      • Ⅲ. 수·당과의 전쟁
        • 1. 수와의 전쟁
          • 1) 수와의 관계
          • 2) 고구려의 요서 공격
          • 3) 수의 침입과 고구려의 살수대첩
        • 2. 당과의 전쟁
          • 1) 당과의 관계
          • 2) 초기 전쟁(645)
          • 3) 중기 전쟁(647∼665)
          • 4) 말기 전쟁(666∼668)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1) 초기 관등제와 관직
            • (2) 4∼7세기 관등제와 관직
          • 2) 합좌제도
            • (1) 제가회의
            • (2) 귀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제도
            • (1) 초기의 지방통치제
            • (2) 「성·곡―촌」제의 성립
            • (3) 성단위 지방통치제
          • 2) 군사제도
            • (1) 군사조직의 변화
            • (2) 군사훈련과 병종
          • 3) 성곽시설
        • 3. 경제구조
          • 1) 토지제도
          • 2) 조세제도
            • (1) 조(租)와 조(調)
            • (2) 부역
          • 3) 산업
            • (1) 농업
            • (2) 수공업
            • (3) 상업
            • (4) 목축업
        • 4. 사회구조
          • 1) 신분제
            • (1) 귀족
            • (2) 중·하급 지배층
            • (3) 호민
            • (4) 평민
            • (5) 노비
          • 2) 법률과 풍속
            • (1) 법률
            • (2) 풍속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영역의 확대

 고구려의 대외정복은 국가체제의 정비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이루어졌다. 정복지역에 대한 지배방식 또한 국가체제의 변천과 함께 변화하였다. 4세기 전반까지 고구려의 대외정복은 크게 나부체제 성립 이전 시기, 나부체제기, 집권적 국가체제의 성립 초기 등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나부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주로 주변 異種族 집단을 복속하였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기원을 전후하여 선비족의 일부를 복속하였다고 한다.121) 고구려 모본왕 2년(49)에 선비족의 異種인 萬離集團이 고구려 예하를 이탈하여 요동군으로 투항한 것으로122) 보아 선비족에 대한 복속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太子河 상류일대의 梁貊,123) 힘의 공백지대였던 함경남북도 산간지대의 荇人國·蓋馬國·句茶國과 두만강 하류의 북옥저도 이 무렵에 정복하거나 복속하였다.124) 즉 동명성왕에서 대무신왕대의 주변 이종족이나 독립소국에 대한 정복·복속 기사는 대체로 나부체제가 성립되기 이전 고구려의 대외정복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기는 계루부왕권이 강력한 통치체제를 확립하기 이전이므로 대외정복은 대체로 계루부의 군사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왕이 친정하거나 동명성왕 이래의 舊臣인 烏伊·摩離·扶芬奴·扶尉猒 등이 왕명을 받아 정복을 수행한다는 기록은 이를 반영한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아직 주변 복속집단에 대하여 강력한 지배를 행사하지 못하고 대체로 영향권 안으로 포섭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1세기 중엽경 나부체제가 성립되면서 고구려의 대외정복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계루부왕권은 각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대외정복을 전개하였는데,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동해안 방면의 옥저와 동예를 복속하고 이 지역의 풍부한 해산물을 확보하여 확고한 배후기지로 삼았다. 고구려는 내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한군현의 성쇠 및 邊民지배정책의 추이를125) 면밀하게 살펴 1세기 후반경에는 동옥저를,126) 2세기 중·후반경에는 동예를127) 복속하였다. 그런데 3세기 전반경 고구려는 옥저의 사회질서를 유지시킨 채 공납을 징수하는 속민지배·집단예민지배를 실시하고 있었다.128) 고구려는 옥저의 大人을 使者로 삼아 읍락사회를 통솔하도록 하는 한편 고구려의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책하도록 하였다. 이는 3세기 전반경 고구려사회에서 대가의 위치와 함께 1세기 후반경 대가들이 옥저정복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보여준다. 대가들은 계루부왕권의 통제 아래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옥저를 정복하고 그 대가로 조세수취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나부체제기의 대외정복은 대체로 계루부왕권이 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통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복속한 이종족집단에 대한 지배도 강화하였는데, 신대왕대 연나부의 明臨答夫가 梁貊을 통제하는 데서129) 보듯이 대체로 나부세력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한편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군현과 직접적인 군사대결을 전개하였다. 1세기말∼2세기초경 현도군을 蘇子河유역에서 渾河유역의 瀋陽―撫順 방면으로 퇴축시킨 뒤,130) 2세기 전반에는 현도군과 요동군 공략에 나섰다. 이 때 고구려는 나부의 군사력뿐 아니라 예맥·선비 등 주변 종족집단까지 동원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태조왕 53년(105) 요동을 공격하여 6개 현을 약취한 이래 현도군과 요동군을 계속 공략하여 태조왕 69년(121)에는 선비 8천 인을 거느리고 요하유역의 군사 요충지인 遼隊를 공략하였다. 그리고 차대왕 1년(146)에는 요동과 한반도 서북을 잇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인 압록강 하구의 西安平을 습격하여 帶方令을 살해하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한군현 공략은 동해안방면 진출과 달리 인민을 노획하고 재물을 초략하는 약탈적 성격이 강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군현세력이 강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고구려 또한 한군현지역에 진출하여 직접 지배할 만큼 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루부왕권은 한군현 공략에서 획득한 포로와 재물을 전쟁에 참여한 각 나부세력이나 이종족집단에게 분배함으로써 왕권의 기반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고, 때로는 한군현과 타협하여 보상을 받고 반환하여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2세기말 후한이 혼란에 빠지면서 한군현의 지배력은 현저히 약화되었으나, 이 틈을 타 公孫氏세력이 흥기하여 요동일대에 세력권을 구축하였으므로 고구려는 요동방면으로 진출할 수 없었다. 특히 고구려는 2세기말 이래 사회경제적 변화에 직면하여 대내적인 개혁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활발한 대외정복을 벌일 수 없었다. 그러나 3세기 전반 중국이 삼국으로 나뉘어져 병립하게 되자 고구려는 공손씨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었다. 처음에는 남중국의 吳와 통교하였으나,131) 魏가 요동방면으로 영향력을 뻗어오자 오의 사신을 참수하여 위에 보내는 등 위와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동천왕 12년(238) 위의 司馬宣王을 도와 공손연세력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고구려는 요동방면에서 위와 국경을 직접 맞닿으면서 위로부터 보다 강한 압력을 받았다. 이에 동천왕 16년 서안평을 선제 공격하였다가, 도리어 동천왕 18·19년에 위의 幽州刺史 毌丘儉의 침략을 받아 丸都城이 함락되고 왕은 북옥저로 피신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고구려의 대외활동은 매우 위축되었는데, 관구검 침입시에 입은 피해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3세기 중엽경 나부체제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통치체제 수립이 시급하였던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고구려는 3세기말까지 대내적인 체제정비에 주력하는 한편 위·진의 간헐적인 침략을 방어하고, 서천왕 21년(290)경부터 선비 慕容部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책을 수립하기에 골몰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3세기 후반 새로운 집권적 국가체제의 단초를 열고 이를 기반으로 5호16국시대라는 국제적 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강력한 대외활동을 전개하였다.132)

<余昊奎>

121)≪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유리명왕 11년.
122)≪後漢書≫권 20, 列傳 10, 祭遵.
123)≪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유리명왕 33년.
124)≪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시조 동명성왕 6년·10년 및 권 14, 高句麗本紀 2, 대무신왕 9년.
125)權五重,<樂浪郡의 支配構造>(앞의 책), 42∼46쪽.
126)≪三國史記≫권 15, 高句麗本紀 3, 태조대왕 4년.
127)≪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濊.
128)盧泰敦, 앞의 글(1975), 30∼32쪽.

林起煥, 앞의 글(1987), 22∼32쪽.
129)≪三國史記≫권 16, 高句麗本紀 4, 신대왕 2년.
130)≪後漢書≫권 23, 郡國志 5, 玄蒐郡條에 인용된≪東觀書≫“安帝卽位之年 分三縣(高縣·候城·遼陽-필자보충)來屬”.
131)≪三國志≫권 47, 吳書 2, 吳主傳 2.
132)집권적 국가체제의 성립 초기 곧 4세기 전반의 영토확장은 이 책 Ⅱ편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생략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