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2. 성립과 발전2) 성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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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성립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신라의 모체인 사로국은 사로 6촌이라 불리는 여섯 개의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사로 6촌의 연맹에 의해 사로국이 성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사로지역에 閼川 陽山村·突山 高墟村·嘴山 珍支村·茂山 大樹村·金山 加利村·明活山 高耶村의 여섯 촌이 있었고, 이들 6촌에는 각각 촌장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삼국유사≫에 나오는 6촌의 명칭 등을 정리해 보면 다음의<표 1>과 같다.

村 名 村 長 始 祖

誕 降 地
改 定 名

(儒禮王 9년)
更 定 名

(高麗 太祖)
位 置 姓氏 俗說
閼川陽山村 竭 平 瓢 嵓 峯 及梁部(梁部) 中 興 部 中 央
突山高墟村 蘇伐都利 兄 山 沙 梁 部 南 山 部 南 村 鄭(崔)
茂山大樹村 俱 禮 馬 伊 山 漸(牟)梁部 長 福 部 西 村  
嘴山珍支村 智 伯 虎 花 山 本 彼 部 通 仙 部 東南村 崔(鄭)  
金山加利村 祗 沱 明 活 山 漢(韓)岐部 加 德 部 東 村
明活山高耶村 虎 珍 金 剛 山 習 比 部 監 川 部 東北村

<표 1>≪三國遺事≫에 보이는 斯盧 6村

 사로 6촌의 위치에 관하여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경상도 일원으로 보는 견해이고,047) 둘째는 경주분지 및 월성군 일대로 보는 견해이며,048) 셋째는 그 범위를 경주분지 안에서 찾는 것이다049). 그런데≪삼국지≫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사로국은 진한의 12개의 소국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진한의 영역이 경상도의 낙동강 동쪽 일대이므로 사로국을 구성하는 6촌을 경상도 일대에 비정한 견해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당시의 소국들은 몇 개의 읍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인접하여 하나의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대구의 경우 新川 유역의 범람원을 무대로 몇 개의 취락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대구지역의 초기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하는데,050) 사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로 6촌은 경주분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들 6촌인과 6촌의 지배세력인 6村長의 출자에 대하여≪三國志≫辰韓條에는 秦의 亡人이라 하였고,≪삼국사기≫에는 고조선의 遺民이라고 하였으며,≪삼국유사≫에는 진한 출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건국 주체세력인 3성 집단이 모두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이주민 세력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이보다 앞서 조선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산골짜기에 흩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는 기록은 단순하게 보아 넘길 수 없다. 이는 아마도 고조선 멸망 이후 유이민들의 한반도 남부로의 유입을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삼국유사≫에서는 ‘진한의 땅에 옛부터 6촌이 있었다’고 하여 이들이 원래 진한지역 출신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으나, 6촌의 시조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天降族 설화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 또한 사로 6촌의 지배세력들이 북방으로부터의 유이민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사로국의 모체인 사로 6촌은 북방으로부터의 유이민 세력이 주축이 되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의 고고학 계통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해서 본다면 경주분지에 정치적 지배계층의 묘제로 등장한 최초의 것은 지석묘라고 생각된다. 청동기시대의 묘제를 대표하는 지석묘는 기원전 7∼2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며,051)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경주분지도 예외는 아니다.052) 지석묘 다음으로 경주에 등장한 묘제는 土壙墓인데, 시기의 선후에 따라 土壙木棺墓와 土壙木槨墓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토광묘 다음으로는 積石木槨墳이 나타난다. 이 묘제들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새로운 지배계층의 등장과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 6촌이 진한지역의 원주민과 북방으로부터의 유이민의 결합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본다면 그 연대는 아무래도 철기문화의 도입 이후가 될 것이며, 그들의 묘제는 청동기시대의 전통적인 묘제인 지석묘와는 다른 묘제가 등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 九政里나 入室里 등의 세형동검을 동반하는 초기 철기의 유적은 이러한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경주지역의 토광묘의 기원이나 편년에 대해 합치된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니나, 이들이 한반도 서북부지역의 나무곽 무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옳다면,053) 이들은 이 지역에 새로운 유이민의 도래와 이에 따른 새로운 정치질서의 성립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054) 즉 고조선의 멸망과 이로 인한 북방의 정치적 변동에 따른 유이민의 波動은 남부지역에서의 소국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진한인들이 낙랑지역의 주민들을 阿殘이라 부른 것을 당시의 중국인들이「阿」를「我」로 보아 ‘뒤에 남은 우리 족속’이란 뜻으로 풀이한 것이나, 辰韓을 혹은 秦漢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秦의 役을 피해 韓으로 간 종족’이라는 식의 중국인의 설명055)은 고조선 멸망 이후 연속적인 남쪽으로의 유이민의 파동이 있었음을 인식한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이들 사로 6촌의 촌장들은 각기 독자적인 정치조직과 통치영역을 갖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들이 비록 하나의 연맹체를 형성하고는 있었겠지만, 그 유대는 그렇게 강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느슨한 연맹체제를 형성하여 공동의 관심사가 있을 때 6촌의 지도자들이 모여 협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아직 어느 한 촌락의 장이 다른 촌장들을 압도할 만큼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047)斯盧 6村의 위치를 경상도 일원에 비정하는 견해는 처음 金哲埈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그는 閼川 陽山村을 慶州에, 金山 加利村을 金泉과 星州 부근에, 茂山 大樹村을 淸風과 醴泉에, 突山 高墟村을 靑山과 尙州에, 明活山 高耶村을 경주와 永川에 비정하고 嘴山 珍支村은 불명이라 하였다(金哲埈,<新羅 上代社會의 Dual Organization>上,≪歷史學報≫1, 1952, 29쪽). 그 후 千寬宇는 이 견해를 발전시켜 茂山을 淸風이 아닌 義城으로, 明活山을 慶山 방면으로 수정하였으며, 嘴山 珍支村은 寧海의 丑山과 蔚珍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하였다(千寬宇, 앞의 글, 18∼46쪽).
048)李鍾旭, 앞의 책, 22∼25쪽 및 李炯佑,≪新羅 初期國家 成長史 硏究≫(建國大 博士學位論文, 1993), 11∼25쪽.
049)李丙燾,<新羅의 起源問題>(≪震檀學報≫8, 1937;≪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596∼604쪽).

李鍾恒,<新羅六部考>(≪國民大論文集≫1, 1969), 1∼51쪽.

金元龍,<斯盧六村과 慶州古墳>(≪歷史學報≫70, 1976), 1∼14쪽.

崔在錫,<新羅의 六村·六部>(≪東洋學≫16, 檀國大, 1986), 205∼226쪽.
050)尹容鎭,<大邱의 初期國家 形成過程>(≪東洋文化硏究≫1, 慶北大, 1974; 歷史學會 編,≪韓國史論文選集 古代篇≫, 一潮閣, 1976, 231∼243쪽).
051)金載元·尹武炳,≪韓國支石墓硏究≫(國立博物館, 1967), 18∼19쪽.
052)경주분지에 분포하는 지석묘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없으나, 대략 경주군과 월성군 일대에 30여 개 정도의 支石墓群이 존재한다고 하며, 토함산 이동의 동해안 지역을 제외한 월성군 내에만도 100여 기의 지석묘가 존재한다고 한다(李鍾旭, 앞의 책, 31∼32쪽 및 李炯佑, 앞의 책, 14∼16쪽).
053)崔秉鉉,≪新羅古墳硏究≫(一志社, 1992), 82∼90쪽.
054)이 문제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 토광목곽묘의 주인공을 6촌의 지도자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金元龍,<고분문화>,≪慶州≫, 열화당, 1984, 258쪽), 토광목관묘를 대개 기원전 2세기 말∼1세기 초에 경주에 도달한 선발 유이민 세력 즉 박씨계의 묘제로 보고 토광목곽묘는 서기 2세기 후반에 남하한 후발 유이민 세력의 것으로 석씨계의 지배세력의 묘제였다는 견해도 있다(崔秉鉉, 위의 책, 80∼109쪽).
055)≪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