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Ⅱ. 신라의 융성2. 정치체제의 정비4) 법흥왕대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불교의 공인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나 백제가 왕실의 주도로 東晉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것과는 그 사정이 달랐다. 아마도 초기에는 고구려와 인접한 국경을 통해 민간에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의 불교 전래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5세기 초 눌지마립간대에 고구려로부터 沙門 墨胡子가 一善郡(善山) 毛禮의 집에 와서 있었는데, 梁나라로부터 온 사신이 가져온 향의 용도를 모르자 이를 일러 주었으며 왕녀의 병을 고쳐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 눌지마립간의 재위 연대(417∼485)는 梁(502∼557)이 아직 건국되기 이전에 해당하므로 연대상의 착오가 있음이 분명하다. 또<阿(我)道碑>에 의하면 미추왕 2년(263)에 阿道가 고구려에서 왔다고 하였는데, 一然은 이 아도가 374년 고구려에 온 아도이며 묵호자와 동일인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214) 그러나 전후 사정으로 보아 신라에 온 아도는 伊弗蘭寺에 있었던 고구려의 아도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이들 기록을 종합해 보면 신라에는 법흥왕대 이전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어 지방은 물론이고 왕실에까지도 불교가 보급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법흥왕대 이전까지는 신라의 불교 보급이 일부 한정된 지역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포교로 끝났다고 여기고 있다.215) 그러나 소지왕대에 모례의 집에서는 몇몇 승려가 신도를 상대로 경전을 강의하였다고 하며,216) 왕실에 焚修僧이 상주하고 있었음을 보아217) 신라의 지방과 서울에는 법흥왕대 이전에 이미 불교가 상당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18) 이는 5세기 초엽의 신라 왕릉 유물에서 연꽃무늬가 나타나고, 불교가 공인될 무렵에 만들어진 順興의 於宿知述干墓의 고분벽화에 불교적 소재가 많은 것으로 보아서도 확인될 수 있는 사실이다.219)

 법흥왕 8년(521)에는 南朝의 梁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두 나라 사이에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 好佛의 군주로 유명한 양나라의 武帝가 보낸 사신인 승려 元表에 의해 비로소 왕실에 불교가 정식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하여 왕실과 불교가 인연을 맺은 이후 법흥왕은 불교를 크게 일으키기 위해 왕경 안의 天鏡林을 베어서 절을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법흥왕의 이러한 시도는 귀족들의 반대로 인하여 무산되었고, 법흥왕 14년에 왕의 젊은 寵臣인 異次頓은 왕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하여 創寺 준비의 책임을 지고 순교하였다. 흔히 이를 계기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었다고 하지만, 이차돈의 죽음으로 인해 곧바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천경림에 짓고 있던 興輪寺의 공사는 중단되었으므로 이 해는 오히려 불교가 박해를 받은 해이며, 법흥왕 22년에 그간 중단되었던 흥륜사의 공사가 재개되었는데 아마도 이 때에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20)

 이렇게 신라의 경우도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적극적인 주도로 불교가 마침내 공인되기에 이르렀는데, 왕실에 의해서 불교가 강력하게 지지받게 된 이유는 불교가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데 있어 매우 적합한 정신적인 지주였기 때문이었다. 진흥왕은 신라 최대의 호국사찰인 皇龍寺를 건립하였으며, 그는 불교에 있어 須彌四洲의 세계를 통솔하는 왕이며 輪寶를 굴리며 四方을 위엄으로 굴복시킨다는 轉輪聖王으로 비유되었다. 또 진흥왕이 정복한 지역을 순수할 때는 많은 臣僚들을 대동하였는데, 그에 관한 기록에는 이들 중에서도 승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렇게 大等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던 승려는 순수에 따른 여러 의식을 주관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를 통해서 이제 불교는 확실히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평왕도 스스로를 釋迦佛에 비기어, 자신과 왕비는 각기 석가의 부모 이름인 白淨과 摩耶夫人으로 이름을 삼았고, 그의 동생들도 석가의 叔父 이름인 伯飯·國飯을 이름으로 하였다. 이는 진평왕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법흥왕 이래 진덕여왕까지 중고기의 왕족들은 그 이름을 불교에서 취하고 있다. 따라서 중고기를 佛敎式 王名時代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221) 중고기의 신라 왕실은 석가의 권위를 빌려서 왕권의 강화를 꾀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처음 불교가 보급되고 공인되는 과정에서 귀족들은 巫覡의 토착적 전통에 집착하여 이를 반대하였으나, 차츰 불교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輪廻轉生思想이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 속에서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해 주는 이론적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적극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기에 전래된 彌勒信仰은 무불융합적인 성격을 지녔던 까닭에 귀족들의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대에 만들어진 화랑은 미륵의 화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귀족의 자제 중에서 임명되었다. 즉 왕은 자신을 전륜성왕에 비유하면서 그의 치세를 돕기 위한 미륵의 출현을 화랑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륜성왕 사상과 미륵신앙은 정치적 세계와 종교적 세계를 조화시킨 가운데, 왕실과 귀족이 불교신앙면에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222)

<李宇泰>

214)≪三國遺事≫권 3, 興法 3, 阿道基羅.
215)李基白·李基東, 앞의 책, 248쪽.
216)≪三國遺事≫권 3, 興法 3, 阿道基羅.
217)≪三國遺事≫권 1, 紀異 2, 射琴匣.
218)辛鍾遠,<新羅의 佛敎傳來와 그 受容過程에 대한 再檢討>(≪白山學報≫22, 1977), 139∼183쪽.
219)辛鍾遠,<新羅 佛敎傳來의 諸樣相>(≪新羅初期佛敎史硏究≫, 民族社, 1992).
220)李基白,<新羅 初期 佛敎와 貴族勢力>(≪震檀學報≫40, 1975), 25∼39쪽.

―――,<三國時代 佛敎受容과 그 社會的 意義>(≪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92), 4∼12쪽.
221)金哲埈,<新羅 上代社會의 Dual Organization> 下 (≪歷史學報≫2, 1952), 91∼92쪽.
222)金杜珍,<불교의 수용과 고대사회의 변화>(≪韓國古代史論≫, 한길사, 1986), 180∼18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