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Ⅵ. 가야의 성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Ⅵ. 가야의 성립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가야 계통 소국들이 점유하고 있었던 지역이 늘 일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비교적 오랫 동안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낙동강 및 그 지류인 남강유역 일대의 땅이었다. 그 경계는 크게 보아 서쪽으로 소백산맥의 지리산·덕유산 등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 迦智山·琵瑟山 등으로 둘러싸였으며, 남쪽으로는 남해에 면하였다. 외부와의 교통 여건으로 보아 서쪽 및 북쪽으로는 지세가 험하여 거의 막혀있는 형세이며, 동쪽으로는 산세가 있다 해도 드문드문 뚫려 있는 형편이다.

 가야지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땅이 비옥하여 강변 및 해안을 따라 골고루 평야가 발달하였으나 곳곳에 나지막한 지맥이 뻗어 있어 광활한 평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지리적인 조건에 따라 둘로 나눈다면 낙동강 하류지역을 비롯한 경남 해안지대와 낙동강·남강 상류지역을 비롯한 경상 내륙 산간지대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은 해상교통 및 농업기반의 면에서 서로간에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해운 입지조건의 면에서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김해지역이다.≪三國志≫魏書 東夷傳에 의하면 3세기 무렵에 낙랑에서 배가 출발하여 서해·남해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데 狗邪韓國에 들렀다가 해협을 건너 倭地로 향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김해지역의 입지적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후기의 기록이기는 하지만≪擇里志≫에서 동해는 바람이 높고 물결이 험해서 서남해의 선박이 잘 닿지 않는 데 비해, 서남해는 물결이 완만하여 전라·경상으로부터 한양·개성·황해·평안까지 商賈가 이어지며 낙동강 입구에서는 강줄기를 따라 상주·진주까지 배가 미치니, 경상도에서는 그러한 南北海陸之利를 김해가 모두 관장한다고 말하고 있다.707) 이와 같은 상황이 고대의 조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면 당시에도 김해는 정치적 조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한반도 서북지방과 경상 내륙지방 및 왜지 등을 연결하는 해운의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김해만큼은 미치지 못하지만 부산·양산·밀양도 낙동강의 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고, 그 서쪽의 창원·마산·고성·사천의 경우 내륙 수로는 없어도 서남해의 해상교역에는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함안은 직접 해안에 면해 있지는 않아도 그들 배후의 육상교통 요지에 있었다.

 기원전 1세기 이후 4세기 무렵까지 김해를 비롯한 경남 해안지대에서의 활발한 교역상은 고고학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물상으로 보아 김해패총에서 출토된 王莽錢, 김해 良洞里 토광묘의 後漢代 尙方鏡, 창원 茶戶里 목관묘에서 나온 前漢代 星雲鏡·五銖錢·琴形帶鉤·小銅鐸, 창원 성산패총에서 나온 五銖錢 등은 낙랑과의 교역을 방증해 주는 것들이다. 또한 김해 池內洞 옹관묘에 부장된 야요이(彌生) 중기의 袋狀口緣土器나 김해 良洞里 목곽묘의 廣形銅矛, 김해 大成洞 목곽묘에서 나온 4세기경의 筒形銅器·巴形銅器·碧玉製紡錘車形石製品 등은 왜와의 교역 또는 이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이에 비하여 낙동강 상류지역을 비롯한 가야지역 내륙 산간지방은 해운 입지조건이 불리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 그와 다른 장점인 농경의 이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의 농경문화 전통은 유래가 깊어서 기원전 6∼5세기 이래 고령 良田洞, 산청 江樓里, 진양 大坪里 등지에서 지석묘·무문토기 단계의 농경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원래 한반도 남부지방은 여름철에 고온다우하고 벼의 생육기간이 넉넉하여 水稻作 농경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경상 내륙 산간지방은 전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었다. 그 지역의 농업 입지조건이 매우 양호한 것이었음은 慶尙右道의 땅에 대한 조선 후기 農書 또는 地志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伽倻川 유역의 성주·고령·합천과 지리산 동쪽의 진주 등은 가장 비옥한 땅으로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한반도에서 가장 많고 농업용수가 풍부해서 旱災를 겪지 않았으며, 안음·거창·함양·산음 등도 상당히 비옥하였다고 한다.708) 조선 후기의 상황이긴 하지만 토지가 비옥하다는 척도로 보아 경상우도 중에서도 내륙 산간지방에 대한 언급은 이렇게 장황한 반면에, 그보다는 평야가 넓은 경남 해안지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즉 이 지역에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지 않은 것은 일정한 한계성이라 하겠으나, 별다른 수리기구가 없는 전근대적인 농업기술하에서는 범람이 잦은 큰 강변의 평야는 농경에 불리하고, 오히려 계곡 사이의 물을 쓸 수 있는 산 밑의 좁은 들이 농업 입지조건의 측면에서 훨씬 더 안정적이고 유리하였던 것이다.709)

 한편 가야지역의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지역에 鐵産地가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생활 유적지에서 철기 제작의 부산물인 鐵滓가 나온 곳만 해도 김해 회현동·부원동 패총, 고성 패총 등이 있어서 고대 鐵産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초기≪世宗實錄地理志≫에는 김해 甘勿也村과 창원 夫乙無山의 沙鐵 생산을 기록하고 있다. 冶鐵址가 드러난 창원시 성산패총의 경우에 최하층에 무문토기 계통의 유물이 존재하고 그 바로 윗 면이 야철지로 추정되며 그 위의 패각층에서 오수전·김해토기 및 철도자 등의 유물이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철자원 개발 및 철기 제작기술의 보급에 따른 야철 그 자체가 이 지역의 발전 및 그에 따른 패총문화의 형성에 기본 동력으로 작용하였음을 반영한다고 보겠다. 철산과 해운의 두 가지 이점이 연결되어 당시의 경남 해안지대에서는≪三國志≫魏書 韓傳 弁辰條에 보이듯이 鐵鋌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 韓·濊·倭·二郡에 철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낙동강 상류지역의 경상 내륙 산간지방에는 아직 야철지가 발굴된 바 없으나 고령·거창·함양·산청·합천·삼가 등지의 高塚고분에서는 다량의 철제 무기와 갑주 등이 부장품으로서 출토되었다. 이는 그 지역에 존재하는 풍부한 鐵鑛자원의 존재와 연결시켜 보아야 할 듯하다. 후대의 자료로서≪世宗實錄地理志≫에 합천군 冶爐縣 心妙里의 鐵場과 산음현 馬淵洞山, 삼가현 毛台亦里 欖頂山의 철장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철산업 개발의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야로현의 철장은 조선 초기 歲貢正鐵 9,500근을 내던 풍부한 것으로서 당시 한반도 3대 철산의 하나였으므로 가야지역내에서 그 철산지의 중요성은 컸을 것이다.

 위와 같이 정리하여 볼 때 가야지역은 질좋은 철광산이 산재한 낙동강변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으며, 그 하류지역의 김해·부산·양산 일대는 해운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고, 합천·고령·성주 등의 상류지역 일대는 안정적이고 양호한 농업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에 낙동강에서 멀리 떨어진 서부 경남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제한적이나마 창원·고성·사천 등의 해안지대는 해운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산청·함양·거창 등의 산간지대는 농경조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므로 전반적으로 가야지역의 지리 및 풍토 여건은 양호하였으나 역사의 전개란 지리적인 요소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되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金泰植>

707)李重煥,≪擇里志≫卜居總論 生利.
708)李重煥,≪擇里志≫卜居總論 生利·山水 및 八道總論 慶尙道.

徐有榘,≪林園經濟志≫本利志 권 3, 東國土品 八域可居地.
709)丁若鏞,≪與猶堂全書≫5, 권 22 및 1集.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