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3. 가야의 멸망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늦어도 550년 초까지 가야연맹 제국은 백제에게 半종속상태로 있었다. 또한 같은 시기인 550년 3월에 백제가 빼앗은 고구려의 道薩城(괴산군 도안면)과 고구려가 함락시킨 백제의 金峴城(진천군 진천읍)을 신라가 다시 빼앗아 가졌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신라와 백제간의 갈등 요인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에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내분상황을 포착하고, 공동으로 북진하여 한강유역을 탈취하려고 모색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551년에 백제와 신라는 한강유역 탈환에 나서, 백제는 하류지역을 공략하고 신라는 상류지역을 공략하였다. 이 때 가야는 백제군을 따라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 당시 신라 진흥왕은 娘城(청주)에까지 순수해 갔는데, 가야에서 투항한 우륵과 그 제자 尼文을 불러 그 음악을 들었다고 하였다.742)

 우륵은 省熱縣 즉 斯二岐國 출신의 사람으로 대가야의 궁정악사였다. 그러한 인물이 대가야가 멸망하기도 전인 551년 3월에 이미 신라에 투항해 있었다는 것은 대가야의 몰락을 예견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야연맹의 백제 부용화가 확정되자, 그는 자신의 12곡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신라로 망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륵이 지었다는 12곡은 寶伎·師子伎 등을 제외하고는 지명으로 보이는데, 이는 가야연맹에 소속된 여러 소국들에 전하는 특징적인 음악들과 몇 가지의 伎樂이 합쳐진 것으로서 우륵은 이를 琴曲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진흥왕은 이를 신라인에게 전수시켰는데, 이는 가야지역 병합에 대한 그의 관심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한강유역 탈환전이 성공한 후 552년의 시기에 가야연맹은 그 패권이 대가야국과 안라국의 둘로 나뉘어 있는 채로 백제에게 종속적으로 연합되어 대외관계면에서 백제와 보조를 같이하고 있었다. 또한 백제는 왜에 불상·경론 등의 문물 전수를 하면서 군병을 요청하였고, 왜는 선진문물이 궁하여 백제의 요청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743) 백제는 가야연맹의 군대와 아울러 왜의 군대도 계속적으로 동원하는 체제를 모색 중이었다고 보이며, 그 궁극적인 목적은 신라에 대한 공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백제의 遠謀가 실효를 거두기도 전에 신라는 553년 7월에 백제의 한강 하류지역 땅을 기습적으로 빼앗고 新州까지 설치하였다. 이에 대하여 백제는 왜로부터 1천 명의 군병을 받고, 그 직후인 554년 7월에 적어도 3만 명 이상의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조직하여 신라의 管山城 공격에 착수하였다. 이 전쟁의 장소는 관산성 즉 충북 沃川지방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강 하류유역과 가야지역에 대한 패권을 다투는 일대결전이었다.

 가야연맹 제국은 백제에 의하여 동원되어 이 전쟁에 임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자신의 명운을 걸고 싸우기보다는 전황의 대세를 점치는 방관자적인 군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하여 전쟁 초기의 상황은 공격을 개시한 백제측이 유리하여 관산성을 불질러 함락시키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신라의 전선을 깨뜨리고 깊숙이 쳐들어간 왕자 餘昌을 위문하려고 백제 성왕이 찾아가다가 복병에게 시해되자 백제·가야연합군은 단번에 무너져서 크게 패배하였다.744)

 그런데 백제가 이러한 큰 패배를 당하는 틈을 타서 북방 고구려가 백제 熊川城(공주?)을 침범해 왔으나, 백제는 고구려로부터의 공격을 쉽사리 방어해 냈다. 이로 보아 전쟁의 결과는 백제에게도 타격을 주었으나 그 직접적인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에 상응하여 가야측의 피해가 훨씬 컸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산성을 둘러싼 이 전쟁의 결과 가야연맹은 큰 피해를 입은채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된 것이라고 보인다.

 그 후 555년부터 558년에 걸친 일련의 한강유역 경영을 대략 마치고 나서 신라는 가야연맹에 대한 병합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560년경에 안라국이 먼저 신라에 병합된 듯하다. 왜냐하면 안라를 대표로 하는 가야 남부지역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왜교역의 중심지였는데, 신라가 이 때부터 왜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고, 한편으로「阿羅 波斯山」에 성을 쌓아 왜에 대비하기도 하였으며, 기록에 따라서는 임나가 560년에 멸망하였다는 이설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745) 다만 안라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멸망하였는가를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신라의 강압과 회유에 안라가 저항없이 이에 응함으로써 병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상 안라는 기존에 이나사·마도 등에 의한 친신라적 교류도 상당히 있었으므로, 백제로부터 직접적 연관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는 쉽사리 신라에게 투항할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 북부지역은 조금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대가야는 왜나 백제와의 교역보다는 자체의 제철능력이나 안정적인 재지농경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말기에는 백제측의 문물을 수용하면서 자발적으로 친백제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신라에 대하여 좀더 독자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듯하다. 대가야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그 주변의 가야연맹 제국도 쉽사리 신라에게 투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라로서도 고구려나 백제측의 동정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신라 진흥왕은 재위 22년(561) 즉 辛巳年 2월 초하루에 상당수의 중앙관료들과 比子伐·漢城·碑利城·甘文의 四方軍主들을 대동하고 창녕지역까지 巡守해 와서 軍勢 시위를 하고 일련의 사면조치도 취하였는데, 이는 가야연맹 제국에 대하여 위협과 유화의 시위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라측의 이러한 위협에 대하여 대가야가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즉시로 전쟁을 일으켰다거나 투항하였다는 흔적도 없다. 그러므로 아마도 대가야는 백제와 신라측의 동향 등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한편으로는 신라측의 압박을 받아 스스로의 투항을 위한 조건을 타진하는 등 여러 가지 눈치를 보는 중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대가야가 어떠한 선제 군사행위를 취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다함의 5천 기병이 대가야 국도까지 먼저 쳐들어갔다. 신라측 기록에 의하면, 진흥왕이 이사부에게 가라국을「습격」케 하였으며, 가라 사람들은 ‘뜻밖에 신라 군대가 갑자기 쳐들어오므로 너무 놀라서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746) 그러므로 대가야는 신라 대군의 기습 공격에 의해 멸망하였던 것이다.

 이를 마지막으로 하여 나머지 대부분의 가야연맹 제국은 대세에 눌려서 거의 일시에 신라에게 항복하고 말았다고 추측된다. 흠명기 23년(562) 춘정월조의 이른바 임나 10국 멸망기사는 멸망 시점이 정확히 표기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이러한 최종 투항사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562년 9월 가라국 즉 대가야의 멸망을 전후하여 안라국·사이기국·다라국·졸마국·고차국·자타국·산반하국·걸손국·임례국 등의 가야10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왜와의 교역에 전념하지 않는 신라가 관산성전투 이후 백제측의 동향마저 무시하고 무력 병합에 나서자 가야연맹 제국은 자체 저항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으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金泰植>

742)≪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진흥왕 12년 3월.
743)≪日本書紀≫권 19, 欽明天皇 13년 5월·10월, 14년 정월·6월.
744)≪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진흥왕 15년 7월.

≪日本書紀≫권 19, 欽明天皇 15년 12월.
745)≪日本書紀≫권 19, 欽明天皇 21년 9월 및 22년·23년 정월 細注.
746)≪三國史記≫권 44, 列傳 4, 斯多含.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