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가야의 대외관계
근래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에 대한 역사 연구는 괄목할 만한 성과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 남부의 일각을 이루고 있던 가야에 대한 역사 연구는 그 사료의 한계성 때문에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고대 한반도 남부의 역사상 재구성은 가야사연구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가야사에 관한 중요 문헌사료인≪三國史記≫나≪日本書紀≫에 보이는 가야 관계기사는 대부분이 당시 한반도내의 각국이나 일본측이 각각 자국의 입장에서 가야와의 관계를 서술한 것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료의 성격 때문에 가야사연구는 먼저 대외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여기에 가야의 대외관계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한 나라의 역사는 국내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요인과 국제적인 계기를 통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가야사 연구의 경우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올바른 가야사상의 재구성을 위해서도 가야의 대외관계 연구는 필수불가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야의 대외관계를 논하는 경우에도 아직 가야 자체에 대한 연구가 확립되어 있지 못한 만큼 먼저 어느 단계의 가야를 주체로 해야 하고 당시 가야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는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야가 삼한의 소국단계에서 가야로 발전하는 것이 4세기부터라고 하는 것이 학계에서 통설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가야가 삼한 소국가단계에서 가야로 발전하는 4세기부터 가야가 최종적으로 멸망하는 6세기 후반까지를 검토의 대상으로 하려 한다. 그리고 가야의 범위는 가야가 김해나 고령을 지칭하고,「某가야」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고 있던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신라말이나 고려 초 이후의 인식이기는 하지만, 일찍부터 가야가「모가야」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어 온 만큼747) 여기서는 가야를「모가야」내지는 한반도 남부의 신라나 백제에 속하지 않은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가야의 대외관계를 논하는 경우에도 가야가 여러 개로 분립되어 있던 만큼 어느 가야를 주체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먼저 가야 제국 중에서 관계되는 가야를 명확히 한 위에 그 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의 대외관계를 논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관계가 되는 가야를 일일이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외관계의 주체가 되는 가야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야를 포괄하는 의미로써의 가야를 주체로 해서 대외관계를 논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가야의 대외관계를 그 특징에 따라서 세 단계로 나누어서 논하려고 한다. 1장에서는 4세기대의 중개외교,748) 2장에서는 5세기대의 부용외교, 그리고 3장에서는 6세기의 분열외교를 그 대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