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Ⅷ. 가야의 대외관계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백제군의 주둔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일본서기≫應神紀 25년(474)조에는 가야가 백제의 영향하에 들어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사가 보인다. 그 중요한 내용은 목라근자가 신라를 쳤을 때 신라의 부인을 취해서 얻은 木滿致가 부 목라근자의 공로를 배경으로 가야의 국정을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다.791) 결국 이 기사는 목라근자가 369년 가야 7국 평정, 그리고 382년의 가야 구원을 바탕으로 그 후에도 계속 가야지역에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결과 아들인 목만치도 부 목라근자의 세력을 바탕으로 가야의 국정을 마음대로 전단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382년의 가야 구원 후에도 목라근자와 그 아들 목만치가 가야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백제가 그들의 행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을 가야지역에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382년 가야 구원 후의 어느 시기부터인가 백제세력이 직접적으로 가야지역에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야의 요청으로 백제군이 가야에 들어와서 상주하게 되었다는 기록이≪新撰姓氏錄≫吉田連조에 있다. 그 내용은 가야가 三己汶을 놓고 신라와 분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삼기문을 야마토왜에게 바치므로 吉大尙의 8대조인 塩乘津이 야마토 조정의 명을 받아 삼기문에 진주하여 그 곳을 진수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야의 요청으로 삼기문에 들어가서 군을 상주시킨 것은 야마토왜가 아니고 백제이며, 그 주체가 백제에서 야마토왜로 바뀐 것은 삼기문에 진주한 염승진의 8대손인 길대상이 백제가 멸망한 뒤(663) 일본에 망명하여 왜인을 칭함으로써 그 조상도 백제인에서 야마토왜인으로 되어버린 결과인 것이다.792) 다시 말하면≪신찬성씨록≫의 기사는 가야가 신라와의 분쟁지역에 야마토왜의 세력을 끌어들인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제군을 끌어들인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 백제군이 가야의 요청으로 삼기문에 들어가 상주하기 시작한 시기가 문제인데 그 시기는 목라근자가 369년 가야 7국을 평정하고 382년에는 가야를 구원했으며, 그 결과 5세기에 들어가서는 그 아들인 목만치가 가야의 국정을 마음대로 전단한 것으로 보아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일본서기≫顯宗紀 3년(487) 是歲조에는 백제군이 가야에 상주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기사가 보인다. 그 중요한 내용은 가야에 주둔하고 있던 야마토왜의 紀生磐宿禰(기노오히하노스쿠네)가 고구려와 교통하면서 삼한의 왕이 되기 위해서 가야에 있던 백제의 適莫爾解를 죽이고 백제에 대항하므로 백제가 古爾解 등을 보내어 그를 격파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야마토정권의 기생반숙례가 가야를 근거로 현지에서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일본서기≫흠명기 5년(544) 2월조에도 뒷받침되는 내용이 보여793) 그 사실성이 입증되고 있는데 기생반숙례가 반란에 즈음해서 먼저 백제와 가야 사이에 대산성을 쌓아 백제의 동도를 차단하여 임나 주둔 백제군을 기근에 빠뜨린 것으로 보아 백제군이 대산성 동쪽의 가야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난을 진압한 것이 백제이고, 역사적으로 당시 가야에 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나라는 백제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난은 야마토왜의 가야 주둔군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백제의 가야 주둔군이 일으킨 반란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이 난을 일으킨 기생반숙례는 백제의 가야 주둔군 장군이 야마토왜의 장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백제군이 가야에 주둔하고 있었고 그 주둔 책임자가 현지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 반란을 시도했다는 것은 적어도 487년 단계에서는 이미 백제군이 가야에 장기적으로 상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경우에 백제군이 가야에 들어와서 주둔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가야의 요청으로 백제군이 삼기문에 들어가서 상주하기 시작하는 4세기 말 내지는 5세기 초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백제군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걸친 군사적 협력794)과 목만치의 가야국정에 대한 전단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369년 백제와 상하관계까지 맺은 만큼, 내외의 압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가야 제국의 백제에 대한 의존은 심화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382년 신라의 침입을 받은 고령가야가 백제에 구원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라와의 대립이 본격화됨에 따라서 마침내 군의 상주까지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5세기에 들어가면서 백제군이 상주하기 시작함에 따라서 369년 이래의 형식적인 상하관계는 실질적인 상하관계로 전환되고 목만치의 국정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479년에는 가야가 중국에 조공하여 輔國將軍本國王이라는 작위를 받아 대내외적으로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795) 그리고 481년에는 백제와 함께 신라의 구원요청에 응하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국력과 자주성을 짐작할 수 있다.796) 이와 같은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고구려에 의한 475년 한성의 함락과 임나경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목씨의 중심 인물인 목만치가 한성의 함락에 즈음해서 야마토왜에 구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그대로 정착함에797) 따라서 생긴 힘의 공백이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487년의 가야주둔 백제군이 본국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가야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479년의 중국조공은 백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가야의 사신이 중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택하던 백제의 영토나 해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798) 그리고 487년의 가야주둔 백제군의 반란사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에도 가야에 백제군이 상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5세기 후반 가야가 취한 일련의 조처도 백제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가야가 취한 중국에 대한 조공이나 신라지원은 고구려와의 힘겨운 싸움으로 배후의 가야뿐만 아니라 신라나 중국과도 관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던 백제의 정책에 잘 합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가야의 자주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움직임도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백제가 북방문제에서 파생된 남방의 힘의 공백을 가야와의 강화로 메우려 한 배려였다고 생각된다.799)

<金鉉球>

791)이 기사에 대한 분석은 金鉉球,≪任那日本府硏究≫(一潮閣, 1993), 55∼61쪽 참조.
792)金鉉球, 위의 책, 118∼120쪽 참조.
793)李鎔賢,<6世紀 前半頃 伽耶의 滅亡過程>(高麗大 碩士學位論文, 1988).
794)382년 백제의 가야구원과<광개토왕릉비>에 보이는 5세기 백제의 대고구려전에 대한 가야의 협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795)≪南齊書≫권 58, 列傳 39, 東南夷 加羅國條에는 479년에 加羅王 荷知가 南齊에 사자를 보내어 輔國將軍本國王에 배수된 것으로 되어 있다.
796)≪三國史記≫권 3, 新羅本紀 3, 소지왕 3년 3월조에는 가야와 백제가 고구려의 신라침입을 구원하는 기사가 보인다.
797)임나경영에 관여하던 목만치가 군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그대로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은 金鉉球, 앞의 책, 54∼61쪽 참조.
798)당시 대가야 사신의 入中루트는 李文基,<大伽耶의 대외관계>(≪伽耶史硏究≫, 慶尙北道, 1995)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799)이런 점에서 497년 남제에 대한 조공이나 481년의 가라구원군 파견을 대가야의 독자적인 대외관계(李文基, 위의 글)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