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목기술
벼농사를 위한 저수지와 관개 수리시설 기술의 발달은 백제의 토목기술과 맞물리는 것이다. 땅을 파고 높은 둑을 쌓아 많은 물을 가두고 그 물을 물길을 만들어 유수량을 조절하면서 흘러나가게 하여 논에 물을 대는 시설을 설계하고 영조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적 문제들이 따르는 사업이었다. 벽골지의 대공사는 그래서 백제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백제 기술자들에 의하여 일본에 건설된 저수지들과 제방들도 빼놓을 수 없다. 백제의 토목 기술자들은 수리시설과 연결하여 논의 면적을 크게 확대하는 공사를 벌였다. 최근에 있었던 부여 궁남지 導水路 발굴조사에서 그 기술 수준이 확인되었다.
백제 산성의 성벽 축조와 교량가설, 대규모의 궁궐과 사찰 영조를 위한 토목공사, 그리고 거대한 미륵사탑과 황룡사 9층탑으로 대표되는 축조 토목공사에서 그 기술 수준이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수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6세기 일본에 파견된 백제 기술자들에 의하여 奈良지역에 건설된 대규모의 불교 사원들과 도시 건설 공사의 정연한 구획과 계획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藤原京 이후 백제 기술자의 후예들에 의하여 708년에서 710년에 걸쳐 조영된 平城京은 도시 계획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정연한 구획과 계획성은 唐의 長安이나 洛陽의 도성에서도 볼 수 없었던 최고의 기술이었다.705)
705) | 吉田光邦, 앞의 책, 108쪽. 吉田는 “大陸系의 工人에 의하여 지도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대륙계의 공인이란 백제 기술자를 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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