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Ⅰ. 삼국통일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신라의 삼국통일은 비록 그것이 불완전했더라도, 新羅史의 입장에서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이후 韓民族史 展開過程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후대 史家들의 회의적이고 부정적 견해로 말미암아 역사적 진실이 가려진 채 혼돈된 修辭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 부정적 견해의 근본적 원인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역사진행의 현장인 당시 상황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후대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불만의 입장에서 각자 숨겨진 목적 실현에 맞추어 멋대로 해석하는 好材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족주의 사학자 申采浩는 일제의 강점에 의한 한국의 피식민 상황하에서 자주와 독립을 되찾으려는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나라 역사를 연구하였다. 따라서 여기에는 유구한 역사의 자긍과 강력한 힘의 투쟁이 요청되었던 까닭에 고조선·고구려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믿어진다. 더욱이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고구려의 끈질긴 대중국투쟁을 부각하는 한편 당과 제휴하여 고구려 및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를 증오하여 낮추어 평가했다고 보인다. 그것은 대당외교를 강화하여 나당군사동맹을 체결한 金春秋를 事大主義의 병균을 전파한 주인공으로 평가했고, 또 통일의 공이 켰던 金庾信에 대해서도 “대개 김유신은 智勇있는 名將이 아니요 陰險鷲悍한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大功이 戰場에 있지 않고 陰謀로 隣國을 亂한 자이다”라고 하였다.0111) 이러한 평가는 국권회복이라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하여 민족적 단결이 요청되었던 상황에서 강조되었던 까닭이었다.

 우선 신라의 삼국통일은 신라국의 획기적 發展의 계기였다. 삼국은 모두 동일종족·동일민족적 특성을 공유했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분리되어 성장하면서 삼국 그 자체가 小國際社會를 형성하고 대립해 왔던 것이다. 신라는 고대국가의 건설과 유·불교의 문화수용과정에서 고구려·백제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세력균형을 취해 왔지만, 신라의 後進性은 좀체로 극복되지 못했던 것이다.0112)

 그러나 고구려의 北守南進政策에 자극된 나제동맹이 120년간 지속되는 동안 신라는 유·불 등을 통해서 문화국가의 면모를 과시했고, 加耶 병합과 한강 유역 정복으로 자국의 국력에도 자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와 영토확장과정은 곧 후진성 극복과정이기도 하여 이후 국제환경의 변화를 自國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어떻게 대처해 갔는가에 주목한다면 신라의 그 정확한 판단과 저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신라는 6, 7세기에 있어서 내외의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줄 알았던 국가의식·국민의식·문화의식을 조화있게 갖추고 있었다. 대내적 권력투쟁도 서서히 안정되었고 급격한 유혈사태에 의해 주체적 변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신라는 중국대륙의 정세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면서도, 먼저 작은 국제사회인 삼국관계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도 하였다. 그것은 신라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 백제와의 항쟁을 고구려와 교섭함으로써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즉 고구려에의 청병이 실패되자 비로소 당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섭하였다. 당은 그의 패권주의적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신라를 끌어들인 셈이지만, 신라의 단계적인 외교의 적중이 그렇지 못했던 고구려·백제와 비교되어 결국 신라는 뛰어난 국제감각으로 현실을 대처하였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신라는 백제·고구려를 패망시키기까지 표면상 당과 주종관계에 서 있었으나, 그것은 신라의 자주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한 외교였을 뿐이었다. 바로 국가의 흥망을 건 대당전쟁은 표면상 유보되었던 주체성 회복운동인 동시에 전쟁 전의 영토분할약정을 지키지 않았던 당을 응징하고 국익을 되찾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신라의 참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가 한반도로부터 수만의 당병을 패퇴시켰을 때 신라의 北境은 임진강에서 함경남도 德源에 이르렀다. 문무왕 8년(668)에 比列忽州를 다시 설치하고 15년에는 현재의 덕원으로 비정되는 鐵關城을 축조했던 데서 알 수 있다.0113) 이렇게 東北境은 크게 북상해 있었고 서북경은 통일 이후 점차 북쪽으로 확대하던 중 발해를 견제시키려는 당이 신라에게 平壤 이남의 영유권을 공인함으로써 聖德王 34년(735)부터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연결하는 북경이 설정되었다.0114) 이 같이 신라의 영토와 인구는 종래의 약 3배로 팽창되었고 이것은 참으로 신라의 획기적 발전이기 때문에 종래 삼국기의「신라」와는 달리「통일신라」라 명명하는 데 인색할0115) 필요가 없다.

 물론 신라의 통일은 완벽하게 삼국을 다 포함하지 못했고 고구려 남쪽 일부를 영유했으면서 삼한을 삼국으로 의식한「一統三韓意識」에 의하여「삼국통일」로 간주되어 왔고 때로는「半島統一」이라는 실증적인 말로도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民族의 활동무대가 축소되었다든지, 요동과 만주지역이 상실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나, 그 책임을 신라에게 전가시킬 이유가 없다. 異族인 唐을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킨 신라를 반민족적 행위로 보려는 民族主義史學은 국가를 잃은 민족으로서 국가건설을 목적한 그 당시의 상황논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논리가 그 글의 行間에 들어 있지 않다면 굳이 민족주의사학이라 할 이유가 없다. 또 오늘날에도 민족만을 주장하는 史學이 있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이 민족 속에 매몰된 다분히 이념적 사학이며 역사적 현실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민족과 국가와 국민을 판별할 줄 아는 사학이 절실히 요청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민족의식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지극히 박약했던 때에 신라는 당을 이용하면서0116) 고구려·백제 양국을 패망시켜서 고구려의 많은 유민을 흡수하였고 백제를 정복·통합하여 삼국 중 자국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최선책을 실현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민족국가 건설의 기반을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본래 삼국은 血統·言語·習慣이 비슷하였는데,0117) 이제 전 백제인과 상당수의 고구려인들이 흡수된 통일신라는 한 국가의 같은 영역 안에서 같은 문화를 향유하게 된 국민으로 정착함에 따라 참으로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잠시 後三國으로 분리되었다가도 高麗國에 의한 再統一이 당연시 된 것은 그 동안 민족적 응집력을 하나의 국민의식으로 축적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일신라의 기반 위에서 고려를 지나 조선조 초기에 이르면서 750여 년간의 꾸준한 북진 끝에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회복·확대할 수 있었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자주성 회복과정은 곤혹스러운 삼국 상호항쟁과 국가이익에 앞선 대당관계를 신라 특유의 대응과 인내와 기다림으로 당차게 극복한 쾌거의 역사이기도 하다. 만일 생명력있는 한민족의 현재를 긍정한다면 신라가 수립한 창조적 전통과 역사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와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李昊榮>

0111)≪丹齋申采浩全集≫ 上(螢雪出版社, 1979), 325∼329쪽.
0112)金哲埈,<統一新羅·支配體制의 再整備>(≪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7), 30쪽.
0113)池內宏, 앞의 책, 478쪽.
0114)李基東,<新羅下代의 浿江鎭>(≪韓國學報≫4, 一志社, 1976) 참조.
0115)김영하,<신라 삼국통일은 타당한가>(≪역사비평≫20, 역사비평사, 1993), 190쪽. 통일신라를 중세라 하면서 ‘통일’을 빼고 ‘신라’라고만 하자는 것이다.
0116)申瀅植, 앞의 책(1990), 37쪽.
0117)申瀅植,<新羅統一의 歷史的 意義>(≪新羅史≫, 梨大出版社, 1985), 3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