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Ⅴ. 문화2. 불교철학의 확립1) 교학의 발달(1) 유식사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유식사상
가. 원측의 유식학

 圓測(613∼696)1039)은 신라의 왕손으로 3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다. 법휘는 文雅인데 자인 원측으로 불렸다. 입당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5세 때에 처음 法常·僧辯(섭론)에게 청강하였다 하니 이때쯤 중국에 간 것으로 보인다. 당 태종이 득도를 허락하고 장안의 元法寺에 머물게 할 만큼 신라왕실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서도 상당한 후원이 있었던 듯하다.

 원측은 중국에서 수학하면서 다양한 불교학을 익혀 비담·성실·구사·婆娑 등에 두루 통달하였고, 梵語 등 6개 국어에 능통하였다. 善德女王 14년(645)에 玄奘이 새로운 經論을 가지고 인도에서 귀국하여≪瑜伽論≫(630년 역)·≪成唯識論≫(659년 역) 등을 번역 소개하자 원측은 빠르게 이 사상을 이해하였다. 武烈王 5년(658)에 西明寺가 낙성되자 원측은 大德으로 초빙되어 이곳에서 지내며≪成唯識論疏≫를 비롯한 많은 논서를 지어 현장의 新譯佛敎를 널리 펴는데 이바지하였다. 한때 終南山 雲際寺에 물러나와 지내고 이후 더욱 한적한 곳에서 8년 동안 한거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서명사에 돌아와≪성유식론≫을 강의하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地婆訶羅가≪密嚴經≫·≪顯識論≫을 가져와 번역하는데(685∼688) 대덕 5인 중의 證義로 참가하였다.

 신라에서는 神文王이 여러 차례 원측의 귀국을 요청하였으나 則天武后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신라에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洛陽에서 실차난타가 새로이 들여온≪화엄경≫(新譯) 번역(695∼699)에 참여한 원측은 이를 모두 마치기 전에 佛授記寺에서 84세로 입적하였다.

 그의 생애를 살펴볼 때 원측은 먼저 眞諦의 舊唯識을 깊이 이해하는 교학 기반을 다졌으나 현장이 호법계통의 新唯識을 갖고 귀국하자 곧 이를 수용하여 크게 선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원측이 진제계 구유식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1040)

 원측의 유식사상의 특징은 위와 같은 그의 생애에서 드러난 사상 경향에서 비롯된다. 유식에서는 인식의 출발점인 마음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여 8가지로 분류한 識說과 존재의 형태를 고찰한 三性說이 중심사상을 이룬다. 원측은 이 중에서 먼저 진제의 식설에 대해 비판하였다.

 식설은 구유식 중에서도 地論과 섭론계통에서 서로 다르게 이해하였다. 지론에서는 마음을 法性心(眞如心)과 相應心(意識)의 둘로 나누고 이 진여심이 純淨無垢의 眞識인 阿賴耶識이라는 심식설을 전개하였다. 慧遠(523∼592)은 이를 바탕으로 기본 감각기관인 眼·耳·鼻·舌·身의 감각 작용인 前5識(識)과, 이를 총괄하는 의식 작용인 제6意識(意), 의식의 심층에 있는 自我인 제7阿陀那識(心), 이 근저에서 모든 행위를 발생하게 하는 근원적인 존재인 제8阿賴耶識(眞如)이라는 8식설의 체계를 세웠다. 지론종 내에서도 勒那摩提―慧光―法上―慧遠으로 이어지는 南道派에서는 아뢰야를 순정무구의 眞識으로 파악한 데 비해, 菩提流支―道寵―僧休로 이어지는 北道派에서는 아뢰야를 染汚生滅의 妄識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진제(499∼569)가 정립한 攝論에서는 6식까지는 지론과 같이 이해하나 제7아타나식은 번뇌장일 뿐이며 제8阿梨耶識(지론의 阿賴耶識과 표기가 다름)은 진여와 果報와 染汚의 세 가지 성질이 있는 眞妄和合識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眞如淨識으로 제9阿摩羅識을 설정하였다.

 이와 같은 진제의 식설에 대해 원측은 아타나의 명칭이≪解深密經≫에는 제8식의 다른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며, 역시≪해심밀경≫에 의하면 식을 전환하여 지혜를 얻는다고 하였으므로 제7식이 오직 번뇌장이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논박하였다. 그리고 제9아마라식이 反照自體라고 하나 경전의 전거가 없으므로 인정할 수 없고, 이 9식無垢識은 아뢰야식의 청정분일 따름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는 신유식의 8식설에 따라 진제의 구유식 식설을 비판한 것이었다.

 원측은 일체 제법을 파악하기 위해 시설한 三性三無性說에서도 진제설을 비판하였다. 진제는 三性을 다른 것에 의해 생기는 依他起性을 중심으로 이해하여 의타기성 위에서 마음에 의해 잘못 상정된 遍計所執性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근원적으로 완성하는 圓成實性이라 하였다. 이 삼성을 차례로 전부 부정한 것이 三無性이다. 원측은 삼성 중에서 진제가 집착하는 작용으로서의 의타기성과 집착하는 대상으로서의 변계소집성을 모두 부정한 데 대해 의타기성을 부정하는 것은 모든 존재의 근거를 박탈하는 것이 되어 올바른 진리마저 부정하게 되므로 이는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원측은 이 밖에 여러 이론을 전개하면서 진제의 학설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신구유식의 견해가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구유식설을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이는 원측의 지향점이 현장에 의해 새로이 소개되어 당시 당의 불교계를 풍미해가던 신유식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원측은 현장에서 규기로 이어지는 당의 법상종 유식사상과는 달리 中觀과 唯識의 대립에 대한 의식에서는 유식 일변도의 이해가 아닌 포용적인 관점을 보였다. 원측이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彌勒은 眞俗을 설하여 아울러 존재케 하고 龍樹는 空有를 설하여 둘다 버렸는데 여기에서 유식과 중관이 비롯된다고 한다. 중관의 淸辨(500∼570)이 체계적으로 유식을 논박하고 나서자 유식은 安慧―진제로 이어지는 無相唯識에서는 중관과 상통하는 일면을 보였으나, 護法―현장으로 이어지는 有相唯識에서는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의 有를 강력히 주장하여 공유 대립의 형세를 드러냈다.

 청변은 歷法遣相觀空門을 세워 일체법은 모두 공이라 하고, 호법은 在識遮境辨空觀門을 세워 일체법은 유무에 통한다고 한다. 청변은 世俗諦에 의하면 空·不空이 있지만 勝義諦에 의하면 공 아닌 법은 없으므로 공에 집착하면 惡取空이 된다 하고, 호법은 변계소집성은 無요,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有인데 일체제법을 덮어놓고 없다고 하니 악취공이라 한다.

 이러한 중관과 유식은 상대방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논리만을 강조한다. 이에 원측은 空觀을 통해 이 둘을 화해하고자 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세웠다. “청변은 공을 취하고 유를 부정하여 유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호법은 유를 세워 공을 부정하여 공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였다. 그러므로 공은 유가 곧 공이라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유는 공이 곧 색이라는 교설에 어긋나지 않는다. 공이면서 유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두 가지 진리를 이루며,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中道를 터득한 것이다.”1041) 이처럼 원측은 청변과 호법을 모두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다. 불법의 큰 뜻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임을 강조하며, 그러기에 “내가 낫다는 논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불법에 심히 어긋난다”고 학파간의 대립적 입장을 경계하는 것이 원측의 관점이었다.

 원측은 아뢰야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현상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당의 법상교학에 비해, 신유식의 식설과 함께 구유식과 같이 현상세계의 이론적 설명과 깨달음으로의 실천적 전환을 포괄하는 삼성설을 중심으로 유식사상을 체계화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진제의 구유식을 비판하고 현장의 신유식을 지지하는 독특하면서도 일관된 체계가 원측 유식사상의 특징이었다.

 이처럼 원측의 사상에는 유식과 중관 그리고 구유식과 신유식의 두 학파의 대립적인 입장을 폭넓게 포용 이해하여 극복하려는 화해의 뜻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원측이 모든 교설을 목적에 이르게 하는 도구인 方便으로 보고 이론 자체의 논리적 체계성보다는 그 쓰임에 주목했던 인식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규기처럼 유식만을 선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측의 유식사상은 중국 법상종에서는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측이 보였던 포용적인 태도는 당시 불교사상계의 가장 중요한 중관과 유식의 지양이라는 과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인식이었다. 이러한 독자의 포용적인 사상체계에 원측이 차지하는 사상사적인 의의가 있다.

1039)宋 復,<大周西明寺故大德圓測法師佛舍利塔銘>(≪日本續藏經≫권 150), 91쪽.

崔致遠,<故飜經證義大德圓測和尙諱日文>(≪智異山華嚴寺事蹟≫, 29∼30장).
1040)高翊晋,≪韓國古代佛敎思想史≫(東國大 出版部, 1989), 140∼152쪽.
1041)圓測,≪般若心經贊≫(≪韓國佛敎全書≫1, 3쪽上).

――,≪解深密經疏≫(≪韓國佛敎全書≫1, 123쪽中).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